서로에게 느슨해져도 된다

- 내가 하고 싶은 것

by 캐리소


결혼한 딸은 종종 우리 집에서 자고 간다.

집은 부산이지만 친정인 경기도에 비즈니스 미팅이 잡히거나 친구들 모임이 있을 땐 소파에 이불과 잠옷만 준비해 두면 언제든 둥지 안으로 파고드는 새처럼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 나 배고파. 밥!"

느지막이 일어난 딸의 첫마디다.

저도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지만 엄마 앞에선 아이가 돼보고 싶은가 보다.

예전의 나처럼.


함께 식사를 하고 나서 그다음 할 일을 앞둔 내게 또 다른 요구가 들어오면 잠시 머뭇거린다.

그러면서 마음도 성글게 움직인다.

루틴을 촘촘히 쌓아둔 엄마의 시간 때문에 전처럼 편안하게 불쑥 끼어들지 못하 딸의 정적이 신경 쓰이지만 그것도 그 애에겐 마디가 자라는 시간이라 믿는다.


다 퍼주고 싶어도 참는 것.

얘기하고 싶어도 꿀꺽 삼키는 것.

두 팔 걷어붙이고 해결하고 싶어도 잠시 주춤하는 것.

어느새 우리에겐 바람 통하는 틈새가 생겨난다.

일방적인 밀착을 밀어낸 자리에 서로를 응원하는 틈새.

엄마도 엄마일에 매진하고 딸들도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아들도 자신 앞에 놓인 것을 대차게 따라가는 것.

그것이 우리들의 틈새를 수용과 인정으로 단단하게 마감하여 자신으로 우뚝 서게 만들 것이다.


전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면 이젠 각자의 시간에 밀도를 더하며 나아가는 중이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


그렇게 내가 살짝 비껴서 주면 나의 미세한 머뭇거림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제 삶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리라.

자연과 세계가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볼 것이다.


같이 있을 때 서로 간섭하기에 바빴다.

간섭의 시선을 거두고 자신에게로 들어가는 길을 넓히는 나날을 만들때, 때론 각자의 마음이 서운함과 섭섭함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지나가야 할 과정임에 틀림없다.


이 과정을 시간 안에다 도닥도닥 쌓으면 어느새 지난날의 모든 생활습관을 뭉개버리고 나도 모르는 새로운 방식의 삶이 피어오를 거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보다는 짧아도 밀도 있는 '함께'를 느낄 수 있다면,

서로에게 좀 더 느슨해져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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