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드럽게 늙어가기
우리가 간 곳은 공장이었다.
일사천리라는 말은 흔히 쓰는 말이지만 내가 내 눈앞에서 본 건 처음이다.
여기는 그야말로 일사천리!!!!!
누구라도 기계처럼 움직이는 곳이다.
가운으로 옷을 갈아입고 카드키를 리더기에 대면 내가 가야 할 곳에 내 이름이 뜬다.
온몸을 스캔하는 기계들이 열일을 하고 빽빽한 직원들은 기계가 원활히 작업하도록 손을 보탠다.
여기선 사람이 주가 아니라 기계의 명령을 수행하도록 보조하기 위해 사람이 존재한다. 검진을 위해 카드키를 목에 건 사람들은 그들의 명령에 속수무책으로 복종한다.
이쪽으로 가세요.
카드를 대주세요.
그다음은 대각선 쪽으로 가셔서 진행하세요.
카드를 접촉하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는다. 길을 잃은 사람들은 엇비슷한 나잇대의 사람들에게 방법을 묻기도 한다.
로비 바닥에는 각기 다른 색의 길테이프가 붙어 있어 어디로 가서 어떤 검사를 해야 할지 가리킨다.
같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밤새 장속에 있는 것들을 비워내느라 좀비가 되어 있다.
손을 늘어뜨리고 배에 힘이 없는 상태로 카드키가 이끄는 곳으로 그다음 순서를 안내받으며 이리저리로 끌려다닌다.
아이들이 아빠엄마의 검진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검진표를 만들었다나?
생애최초로 하는 검사들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오늘은 너희들의 온몸을 샅샅이 훑어주겠다 작심한듯한 검사들에 지레 질려버린다. 이렇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속을 스캔하면서 찾아내야 할 것은 과연 무얼까.
삶일까, 삶을 지탱할 육신일까.
다 같은 옷을 입고 있던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몸은 이렇게 세심하게 확인하는데 내 안에서 나를 움직이는 정신에는 어떤 관심을 주고 있나.
육체에 대한 관심은 폭발하고 있지만 정신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는 도무지 생각지 못한다.
나는 왜 정신에 관심이 생겼을까?
이대로 사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육신이 다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지어진대로 살지 못하니 '정신을 세울 필요'가 작동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배우고 있는 중이지만 정신이 바로 세워지면 일상과 삶의 방향이 지그재그가 되지 않는다.
정신의 건강상태와 질병의 유무.
질병이라 단정하고 싶지 않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나의 인식상태는 질병의 결과를 불러오는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내겐 책으로 증상을 들여다보는 새벽이 곧 정신을 스캔하는 시간이다.
경전과 철학을 읽고 인문학을 접하면서 내 시냅스의 상태를 살핀다. 읽은 책을 거울삼아 나의 삶을 대입하고 어떤 생각과 행위가 균형을 이루는지, 불균형 속에 처박혀 있는지 검진한다.
오늘 검진에서는 육신의 쇠락함을 떠올렸다.
산화되고 쇠퇴해 가는 자연의 법칙을 몸 안에서 바라본다.
어차피 모두 늙어가는 거 좀 더 부드러운 과정이면 좋겠다. 검진 후 훌훌 떠먹는 죽처럼.
늙는 것도 따끈하고 부드럽게 천천히 소화시키면서.
어디 막힌 곳은 없는지 뚫어가면서.
비단 육신뿐 아니라 정신의 동맥경화도 인지하면서 그렇게 늙어가는 과정을 잘 들여다보면 좋겠다.
오늘 이 북새통 속에 많이 지친 사람들 속에 우리 부부가 있었다.
이렇게 늙어가는 삶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