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하고 싶다

- 젓가락질

by 캐리소

난 젓가락질을 잘 못한다.


젓가락 한쌍으로 살포시 반찬을 집어 올리는 게 아니라 엑스 자로 뒤집히는 젓가락에 억지로 음식을 꿰어 올린다. 간혹 핀트가 엇나가서 일 년에 한 번씩은 앞에 앉은 사람의 밥그릇으로 반찬이 날아오르기도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대략 난감이다.

호들갑스러운 사과로 일단락되긴 하는데 미안한 마음은 긴 꼬리처럼 남는다.


가끔 젓가락질을 잘하는 남편이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고칠 생각은 없다.

서툰 젓가락질을 교정하지 못한 무신경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어깃장을 놓고 고집을 부린다.


50이 훌쩍 넘어서 이제야 젓가락질을 다시 배우는 심정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난 젓가락질을 처음 배우는 아이가 된다.

괴발개발 쓰던 3년 전이나 매일이라도 쓰는 근육을 키우고 있는 지금이나 글에 대해선 첫 마음이고 첫걸음이다. 그래서 늘 전전긍긍이다.


글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의 거리가 있는 일인지 해보고 알았으니 말 다했다.

읽는 일은 긴 줄을 서야 하는 맛집에서 지인사장을 둔 찬스를 이용하는 쾌감이라면, 글을 쓰는 일은 음식맛도 못 보고 써야 하는 후기 같은 것이다. 그래도 그 후기가 나름 쏠쏠한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고작 3년이다.

그것도 쓰다 안 쓰다 띄엄띄엄 이었고.

매일 쓴 지는 1년 남짓이다.


그 이전에는 그냥 일기를 쓴 것이지 글은 아니었다.

내 생각에 글은,

내 안에 있는 생각과 내가 살아온 경험을 글이라는 요소로 집어내는 젓가락질이다!


젓가락질처럼 숨길 수도 없고 꾸밀 수도 없는 게 바로 글쓰기가 아닌가.

엉성한 글은 엉성한 나를 들키게 하고 무지한 글은 무지한 나를 바로 드러내어 버린다.

그래서 글은 투명하고 무섭다.

화려한 글솜씨를 가진 작가들은 다른 철학을 갖고 있을지 모르나 글무지렁이인 나는 그렇다.


그래서 이제 막 시작하는 젓가락질에 자주 삐끗하고 얼얼한 손가락으로 덜덜 떨며 글을 집는다.

어느 날은 잘 안 돼서 하늘이 무너지는 탄식을 하고, 또 어느 날은 조성진의 피아노 선율처럼 매끄럽게 키보드 위를 달음질한다. 그럴 땐 콱 꼬집힌 듯 어설픈 에피파니를 내면으로 만끽한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런 날도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 우스운 시소게임은 글쓰기에 파묻혀 갈등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제대로 써야 하는 괴로움의 보따리 속에 나만이 발견하는 쾌감이 없었다면 애초에 젓가락을 던져 버리고 포크질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젓가락 실수를 빼면 내 젓가락질은 튼실한 내 살의 증거이기도 하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하는 DJ. DOC의 노래가 아니더라도 밥은 넘치게 잘 먹으니까.

그런데 유치원 아이들이 쓰는 에디슨 젓가락 말고 글에 있어서는 나만의 독특한 젓가락질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게 엑스자 이건 오 자이건 간에 말이다.


내 손에 착붙인 젓가락질, 나만의 노하우와 우아한 손놀림으로 식사를 아름답게 완성하는 젓가락질 말이다.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젓가락질이 겁나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 나를 납득시키는 마침표를 완성하는 것도 나다.


그러니 부실한 젓가락질을 부끄러워하는 나를 꺼내서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요상하고 괴상한 젓가락질이라도 내 멋이 담긴 것이라면 식사를 가능케 하는 행위가 된다고.


글의 젓가락질이 제대로 될 때, 밥상 앞에서 하는 엑스 젓가락질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으리라.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젓가락질의 어깃장과 고집이 나만의 유일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게.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