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공을 장착하고 싶다

by 캐리소


오늘 공방에는 선생님과 나 단둘이다.

눈이 퀭한 선생님은 어제도 교재를 만드느라 잠이 부족했단다.

원래 수업 시간이 아니지만 내 사정으로 개인지도를 받게 된 셈이라 살짝 죄송했다.

하지만 나 때문에 일부러 나온 게 아니라 교재제작 때문이니 그럴 거 없다고 해서 마음을 놓는다.


공방 수업 후 혼자 하면서 실수하고 실패하는 스케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다른 센터 수업을 예로 들며 단번에 잘하고 싶은 욕심을 부리는 수강생들의 이야기를 하신다.

설명을 듣지 않고 교재에 있는 그림을 미리 그려와서는 결국 다시 그리는 경우가 많단다.

그러면서 선생님처럼 잘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다고 한다.

그럴때 선생님은 과정을 뛰어넘어 지름길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백 번을 망치세요!" 하고 처방을 내려 주신다.


선생님도 하루아침에 얻은 게 아니라고,

자꾸자꾸 실패하고 망쳐야 그나마 내가 원하는 형태를 찾을 수 있다고.

단순히 결과만을 볼 때 타인이 지나온 수많은 축적의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다.

혼자서 묵묵히 쌓은 시간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요즘 들어 바라는 것은 시간을 밀도 있게 쓰는 것이다.

당장 이번 달까지 수행해야 할 미션이 있고, 두 달 후에 완성해야 할 과제가 있다.

미션을 앞에 두고 나 자신에게 진심으로 원하는지 물었다.

답은 분명했고, 내놓은 답은 어떤 방해가 있어도 해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시간을 밀도 있게 쓰기 위해선 집중도를 높여야 한다.

밀도를 벗어난 시간이 쌓이면 처음에 작았던 구멍은 점점 커질 것이고 결국 내용이 공허해질 것이다.

하나를 하더라도 완성도 있게 해야 하는데 요즘 완성도를 만나는 날이 많지 않다.

완성도 대신 조바심이 먼저 나를 찾는다.





살면서 여러 가지 미션을 받아왔다.

그 미션은 자의라기보다는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므로 반강제성을 띄는 것들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가진 패는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패다.

그런데 웬일?

열정을 끝까지 유지하려면 매일, 일정하게, 숙제처럼 주어진 일을 부단히 해야 하는 것이다.

오랜 기간 무엇인가를 숙련해서 다져진 실력은 매일의 수행 속에서 쌓이는 것이다.

그걸 내공이라고 한다.


오랜 기간의 경험을 통해 쌓은 능력.

이것처럼 든든해 보이는 게 없다.

견고하다.

그 능력 위에서 내가 원하는 형태를 그리고 쌓고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폴 발레리가 그랬단다.

작품을 '완성'하는 건 없다고.

어느 시점에 포기하는 것이라고.

나는 '포기'보다는 '결정'이라고 하련다.

결정의 종지부를 찍으려면 먼저 수많은 데이터가 쌓여야 하는 것이다.


데이터는 정리, 관리, 활용이 가능한 상태로 지속적으로 쌓는 것이다.

쌓인 데이터로 나의 패턴을 파악하면 그 패턴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패턴을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내공을 바라는 나여,

백 번 망칠 각오와

백 번 망칠 당연함을

먼저 장착하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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