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작은 농산물을 키워볼까?
피땅콩 껍질을 깠다.
아마 2. 3백 개쯤 됐을 거다.
여주에서 직접 농사지은 땅콩을 지인이 보내준 것이다.
이웃 어른들과 나누고 나니 우리 가족이 먹을 만큼 남았다.
사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선물은 그리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씻고, 데치고, 졸이는 그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반찬통 하나를 채우는데, 정작 식탁 위에 올리면 식구들 젓가락은 그리 자주 가지 않는 가성비 낮은 식재료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주신다고 해도 웬만하면 사양하곤 했다.
하지만 이젠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게 되었다.
함께 글을 쓰는 문우들 중 수백 평 땅을 일구는 대농부와 이제 갓 수확의 기쁨을 알아버린 소농부, 두 분이 거둔 수확물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임을 곁에서 봤기 때문이다. 주변에 텃밭을 일구는 어르신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분들이 일군 자연의 산물은 그동안의 성긴 내 삶에 마침표를 찍는 소중한 선생이다.
무엇보다 마음이 저릿한 건 ‘어머니들'의 부재다. 양가 어머니께 받아먹는 것이 당연해 먹거리를 귀하게 여길 줄 몰랐다. 한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한 분은 편찮으시다.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존재’로 대접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눈부신 축복이었는지 뒤늦게야 알았다.
그래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주신 분의 시간과 사랑이 들어간 농산물은 함부로 생각할 수가 없다.
새삼스레 애틋하다.
껍질 까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 집에 온 지 며칠이 지나서인지 껍질은 수분을 잃고 단단하고 억세져 있었다. 맨손으로 덤볐다가 손가락 끝이 얼얼해지고, 짧게 깎은 손톱 사이가 벌어질 것 같았다.
이것저것 도구를 찾아본다.
스패너처럼 생긴 것이며, 호두까기 가위며, 냄비집게에 정원가위까지 총출동한다.
그중에서 정원 가위가 손에 쥐는 그립감이 좋았다.
그걸로 두꺼운 껍질을 부수고 알맹이 땅콩을 꺼냈다.
처음엔 손도 아프고 언제 다 하려나 막막하더니 양이 점점 줄어드는 게 리듬감까지 속도를 거든다.
도구가 쓰는 바람에 순식간에 바닥이 드러나고 결국 다 끝났다.
껍질 작업을 하다가 발견한 게 있다.
두꺼운 땅콩 껍질의 안쪽 면이었다.
어떤 것은 뽀얀 흰색을 띠고 있었지만, 어떤 것은 먹물을 칠해놓은 듯 새까만 색을 갖고 있었다. 피땅콩을 까본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 껍질 안쪽이 이토록 캄캄한 검은색은 처음 본다. 국산이라서 그런가?
겉으로 드러난 표면과 그 속은 이토록 다르다. 사람의 일도, 사물의 이치도 결국 직접 겪어봐야만 그 진면목을 알게 되는가 보다. 수북이 쌓인 껍질들 사이에서, 나는 또 이렇게 소소한 경험 하나를 주워 담는다.
땅콩을 맑은 물에 씻어 끓는 물에 데쳐낸 뒤 간장을 붓고 자작하게 졸였다.
끓어오르는 냄비 위로 간장 냄새가 퍼진다.
비록 땅콩을 까느라 손가락 감각은 무뎌졌지만, 덕분에 식구들과 며칠 동안 맛있게 먹을 반찬을 얻었다.
식탁 위에 오른 윤기 나는 땅콩조림을 보며,
농부들의 하루와 낡은 정원 가위,
그리고 땅콩 껍질이 품고 있던 까맣고 하얀 시간들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