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을 잡고 싶다

by 캐리소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던 장면이 있다.

전력질주해서 목표지점에 꽂혀있는 깃발을 잡는 것이다.

있는 힘껏 뛰어가서 깃발을 뽑을 땐 보는 사람도 환호성이 터진다.


달리기를 못해선지 이기고 싶은 욕구도 없다.

그러나 글쓰기는 다르다.

경쟁도 아니고 그저 나 하나만 뛰어넘으면 된다.


실제로 글을 쓰기 위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일이야말로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 쓰기의 감각, 앤 라모트.


줌 화면의 우리는 고요하다.

미간을 찡그리듯 모아 화면을 노려보는 사람.

옆얼굴을 보아하니 독서에 빠져있는 사람.

고개를 숙여 집중하고 있는 사람.

각자의 글과 각자가 읽는 책 속에서 자신의 사유를 키워가고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내면의 많은 말이 화면에 흐른다.


요즘은 어린아이들도 놀이터에서 놀 시간이 없다지만,

우리는 우리의 놀이터에서 시간을 벚꽃잎처럼 뿌리며 논다.

우리에게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시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 너머에 있는 존재들이다.



더 나은 글을 위해 자신을 엄격히 후벼 판다.

때론 글쓰기에 대한 압박감이 함몰로 데려간다.

눈 가린 안대를 벗는 일이 수월하지 않다.

함몰에서 빠져나온 자는 전보다 한결 파리해진 모습이다.


쓰기의 부담과 고통을 감수하게 하는 힘은 뭘까.

쓰는 일은 나의 정체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글을 쓰는 동안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난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내가 굉장히 모호한 사람인 것을 발견했고

자책의 이면에는 부끄럽게도 자기애가 숨어있다는 것도 알았다.


글쓰기는 시베리아 벌판이고

동시에 봄이다.


시린 바람과 뺨을 후려치는 영하의 온도가

노트북 화면 위로 쏟아진다.

오롯이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는 고립감과

이게 글인지 글자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는 불안함을 동반한다.

글을 쓸 때 좌절은 절대 친구 삼고 싶지 않은

가까운 이웃이다.

반갑지 않지만 자주 찾아온다.

자신이 쓴 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한다.

아니 의심은 필연이다.


이렇게 읽고 쓰고 사유하며

자신의 바탕을 단단하게 다진다.

바탕 위에 무엇을 세우려는 것일까?

세우기보다는 자신이 바탕이 되기 위해서다.


글이 숨 쉬는 바탕,

무엇이든 세워지는 바탕.

놀고 살고 이루어내는 바탕.

바탕이 단단해야 그 위에 서있을 것들이 안전하다.


나 하나만 제치면 깃발이 보이는데 자꾸 뒤로 밀려나는 트레드밀 위에 선 것 같다.

또 좌절이다.

깃발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단한 바탕을 딛고 걸어가는 길 위에 있다.


깃발을 잡아채는 그립감을 내 손맛에 새기는 날은

나를 온전히 드러내고,

내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는 순간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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