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핑계 버리기
남편이 방문을 빼꼼 연다.
" 안 갈 거야?"
독서에 빠져 있던 나는 대답을 얼버무린다.
매달 첫날은 기도하러 가는 날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책상 앞에 앉아 책에 코를 박으면 좀체 일어서고 싶지 않아서 이번에도 패스한다.
남편이 새벽에 일을 나가면 그 핑계로 패스하기도 한다. 말로도 그렇고 행동으로도 종종 무언가에 어딘가에 핑계를 댄다.
핑계를 댄다는 건 거기에 기대어 내 진심을 왜곡하는 일이다.
나는 내가 결정한 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선하든 악하든 그렇다.
천재지변이나 물리적 환경, 시대는 내가 어쩌지 못한다고 해도.
내가 움직이고 행동하는 기저는 내 결정이다.
그런데'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하는 선택불가증후군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뭘 원하는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할 때가 아닐까 한다.
타인에게는 우스울법한 일이 내겐 어려울 때가 있다. 그게 나다.
생각은 튀고 행동은 굼뜬다.
에머슨은 인간은 법률이 아닌 그 사람의 마음과 행동에 의해서 선해진다고 한다.
법률보다는 내적 양심과 도덕을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데 내적 양심과 도덕도 법률의 제어를 받을 때가 많다.
그래서 더욱 최종결정은 자신의 양심과 도덕의 수준에서 내려지는 것이다.
이번 주 설교에서 목사님은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본질인 신의 성품을 따라 우리도 삶에서 자비와 긍휼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일에도 대가가 따른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행동에 옮긴다는 건 불가능하다. 에머슨도 그점에 동의하고 있다.
시간이든, 물질이든, 마음이든 공급하려면 내 안에 존재했던 무게와 공간만큼 뚝 떼서 내놔야 한다.
삶에 작은 부분에서부터 큰 문제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옳은지 묻고 생각을 궁글려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내게 가장 어려운 점은 나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참마음으로 따져 묻는 것이다. 거기에 핑계는 없다
양심
자비
아침에 나를 찾아와 질문을 놓고 가는 단어들이다.
여러 권의 독서와 수많은 원리를 안다고 해도 결국 남는 건 활용이고 행동이다.
행동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