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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면 안 되는 이름_24화(마지막화)

밀감아, 엄마는 그만 가 볼게.

by 벙긋 웃는 문혜력

나의 아기 밀감아, 안녕?

어린 나이에 갑자기 엄마가 없어져서 너무도 아팠을 우리 막내...

언니 오빠의 가슴팍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본 그 순간도, 스무 살도 안된 너의 꼬물꼬물함을 내팽개치고 떠나가야 했던 그 순간 또한 엄마에게도 잊히지 않는 순간이로구나.

안타깝게 여겨야 하나? 내가 육신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는 그 찰나에 너의 아픔뿐 아니라 모든 이들의 희로애락이 나와 확 멀어졌다. 무정함과는 다른,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속성의 일부가 되었다고나 할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아가, 엄마는 안정을 찾았어. 내가 이 말을 하기 전까지 너는 엄마를 얼마나 안타까워했으려나? 그 안타까움과 설움을 끌어안아주고 싶다. 이런 생각과 달리 나의 부재가 나쁘기만 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진 지금이다. 네가 잘 자라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해줄 수 없었을 만큼.


나의 막내 밀감아, 너의 삶에 대한 애착과 열심을 보았다. 열심이 모든 계획을 완성시켜 주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네게 더 헛헛한 마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엄마의 안쓰러움이다. 그 모든 마음의 상태를 이겨내고 너는 최선을 다하고 살고 있구나. 남편과 자식과 또 네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이 있다. 네 마음을 돌보렴. 엄마처럼 무엇을 이루어보려는 일에 착념하다가 그 일이 자신을 압도해 버리고. 그 일이 완성되지 않은 채로 자신까지도 잃어버리는 순간과 직면할 수도 있으니까. 정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되더라. 막상 죽음의 문턱을 지나고 보니 내가 몰두했던 일들이 신기루였음을, 아니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하고 싶으면 해. 어차피 뭔가는 하면서 살아야 할 테니. 다만 너 자신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다.


이곳에 와 보니 참 좋다. 완벽한 쉼이란 게 이런 것이 아닐까? 이생의 시간으로 상당한 시간의 쉼을 갖고 있는데 말 그대로 안식이다. 질리지가 않아. 그리스도의 빛이 나를 항상 쬐어주고 계시다. 나는 살아생전 의지할 이라곤 그리스도 한 분뿐이었는데 나의 눈물을 씻어주시고 고통이 뭔지 잊게 해 주셨다. 무감각이라고 지각되지 않는다. 참 안식에 거하게 됐다는 걸 더 알게 될 뿐이더라. 지금은 여기가 나의 이생이야.


우리 밀감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참 시끄럽구나. 사랑이라는 말이 무색해 보이는 그 세상에 그래도 군데군데 소리 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보이는구나. 우리 막내 밀감이도 그렇게 살기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이 엄마는 알고 있다. 조심해! 너의 헌신이 교만이 되지 않도록.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자기만족이 되지 않도록! 못나고 못됐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도 늘 축복의 말을! 참 어렵다, 그렇지? 그렇게 잘 살고 나서 엄마랑 다시 만나자!


병상에서 입술이 떨어지질 않아 불러보지 못한, 잊히면 안 될 보기에도 아까운 내 새끼들의 이름을 오늘 엄마는 불러본다. 금아! 강산아! 밀감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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