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파티의 종말

말이라는 감옥에 갇혀버린 날

by 고요한마음

저녁에 치킨을 맛있게 먹다가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졌다.


다음 주 금요일에 가족끼리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었는데, 첫째 태권도 행사 때문에 공연을

못 가게 되어 티켓을 날려야 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남편 회사에서 저렴하게 나온 티켓이라

돈이 아까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노쇼 할 경우 다음번에 기회가 안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남편이 생각한 방법이 나를 한쪽 구석으로 소외시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남편은 첫째는 어차피 태권도 행사로 집에 없을 테니

나는 둘째와 집에 있고 본인은 시어머니, 아이들 고모와 고모부 이렇게 넷이서 보고 오겠다는 것이다.

마침 아가씨가 임신 중이어서 태교도 할 겸, 어머님 경험도 시켜드릴 겸.


순간 응? 생각이 정지되었다.

여기서 내가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 건지,

나도 내 감정을 잘 모르겠어서 한참을 티 내지 않게

내 마음이 방황했다. 그 순간부터 남편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더라. 어떤 의미로 남편이 그런 생각을 했는지 머리로는 100번 이해가 갔지만 요즘 회사를 옮기고 바빠진 남편 때문에 아이들 육아는 온전히 내 책임이고 더군다나 돌아오는 주와 그다음 주까지 남편은 회식+개인 약속으로 평일에 총 4번이나 약속이 잡혀있는 상태였다. 월, 목, 월, 목.


안다. 남편 출근해서 일하느라 힘든 거. 윗사람 비위 맞추느라 스트레스받고 잠도 줄여가며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거. 그렇지만 그러면 나는? 나는 그냥 편하게 숨만 쉬고 있는 존재일까?

동시에 부모님 생각까지 잡념의 뿌리가 뻗어나갔다. 다리가 불편해 걷지 못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 곁을 꼼짝없이 지키고 있는 엄마. 집이 멀어서, 남편이 바빠서, 아이가 어려서 자주 못 가보는 게 참 죄송한 마음인데 나의 이런 마음에 대한 단 1의 배려심도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뱉어버리는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칼로 찌르는 것 같은 혹은 감옥 속에 가두는 기분이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시어머니가 하셨던 뼈 아픈 한 마디까지 떠오르니 도대체 식사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앉아있지를 못하겠더라.

'너도 참 부모 복 없다'라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뱉으셨던 그 말 한마디가 또 머릿속에서 맴돌며 메아리를 울려대기 시작했다.


화기애애하게 시작했던 주말 치킨파티는 어색한 기류와 함께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나는 괜히 아이들이 보고 있던 '신비아파트'에 함께 정신이 팔린 것처럼 굴었다. 마음 같아서는 방에 들어가 눕고 싶었지만(결국 한참있다가 방에 들어가 누웠다)


12월이면 일본으로 태교여행 가는 고모네가 그렇게 신경 쓰였다면 나도 좀 비슷하게 신경 써주지.

당신이 가장 잘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내가 혼자 남아서 애랑 있는 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건지 아이는 당연히 나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너무 많은 생각들이 자꾸 머릿속을 헤집어 놓아서 치킨 때문에 한층 업되었던 기분은 푹 꺼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직까지 회복이 안 되는 중.


괜히 릴스보며 큰소리내서 웃어보고 했지만 도무지 회복이 안된다. 스스로가 속 좁은 사람인 것만 같아서 남편에게 대놓고 따지지도 못하겠다.

참 말 한마디에 아직도 이렇게 흔들리는 나를 보고 있자니 한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최근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최대한 존중한다 생각했거늘 아직도 멀었는가 보다.


오늘 밤 나는 이 감옥 안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들어 낸 상처를 잘 봉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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