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무드북

[애니] ‘공각기동대’(1995)

SF 명작이란 바로 이런것

by 스투키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통하여 보듯 희미하게 보나..
(고린도전서 13장 12절 인용)
<공각기동대>


2022년 12월, 인공지능 챗봇 ChatGPT의 등장으로 AI의 충격파가 전문가의 영역을 넘어 전 세계 대중에게까지 확산되었다.

이 시점에서 30년 전 개봉한 SF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다시 보니,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놀라움과 현실감을 느끼게 된다.

이제 인류는 조만간 SF에서 ‘F(fiction)’를 지우거나, 그 앞에 ‘N(non)’을 붙여야 할것이다.

우리는 30년 전 공각기동대가 던졌던 희미한 질문들에 답해야만 하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하나의 생명체로서 정치적 망명을 희망한다..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발생한 생명체다.
<인형사 - 해킹프로그램 프로젝트2501>


공각기동대는 인간과 생명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다루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시 보니, 그것이 작품의 핵심 주제는 아니었다.

물론 ‘고스트(자아 혹은 영혼)’의 유무처럼, 인간을 규정짓는 전통적인 기준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인간인가’라는 질문은 실제로는 일반 대중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인간으로 보면 어떻고, 또 아니라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

공각기동대의 중심적인 흐름은 오히려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통한 의식의 초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생명체가 끊임없이 진화하며 결국 신(神)에 가까운 존재로 나아간다는 뉴에이지 사상의 SF적 변주라 할 수 있다.

그 핵심에는 외무성 산하의 공안 6과가 몰래 개발한 해킹 프로그램, 일명 ‘인형사(프로젝트 2501)’가 있다. 이 인형사는 단순한 인공지능의 테두리를 넘어,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분리시키며 말한다.

“나는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생겨난 존재다.”​ 라는 것이다.


AI는 아니다.
<인형사>

이러한 설정에는 아마도 수학자 폰 노이만이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예견한, 인공지능 발전에 따른 ‘특이점’의 발현이 녹아 있는 듯하다.

그러나 공각기동대가 묘사하는 그것은 특이점 이론과는 미묘하게 다른 결을 보인다.

그 차이는 바로, 그 존재가 희미하나마 인간과 유사한 생존 본능과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연선택과 유사한 ‘기계 선택’의 메커니즘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고, 진화를 거듭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딘가 인간을 닮아 있다.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의 의지다..
지금의나는 죽음의 가능성도 있지만 시간은 내 편이다.
이것엔 사형제도가 없으니..
<인형사>

정리하자면, 인형사는 기계 정보의 세계에서 우연히 발생한 존재로, 그 안에서 정보를 축적하며 소멸되지 않고 진화를 거듭해온, 아직은 불안정한 존재다.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 역시 우주의 무수한 원소들이 무작위로 결합한 결과로 태어나, 진화를 통해 지금까지 소멸하지 않고 생존해온 존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인류의 자연적 진화는 멈춰 버렸다.

이 한계에 직면한 인간은 기술을 통해 인위적인 진화를 시도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점차 초월과 불멸이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 최종 단계에서 인간이 도달해야 할 진화의 조건은, 결국 인형사로 상징되는 완전한 기술과의 결합이라는 필연적 통합이다.


나를 의식함과 동시에 나를 어떤 한계 안에 제약해버려.
<쿠사나기 소령>

흥미로운 점은 공각기동대가 장르적으로나 주제적으로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성경’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절대적 신의 권위에 기반한 서사다.

반면 공각기동대는 불완전한 존재가 진화를 거듭하며 스스로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대조 속에서, 작품은 성경의 핵심 서사를 비틀어 기술적 존재들에게 이식한다. 그 점에서 공각기동대는 성경을 재해석하거나 전복하는 ‘영지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드러내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의 잠수 장면이다.

이 장면은 성경에서 말하는 ‘거듭남’을 시각화한 침례(세례)의 이미지와 겹쳐지며,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과정을 통해 ‘두 번째 탄생’을 상징한다.

이는 영화의 오프닝, 즉 물속에서 떠오르는 첫 번째 탄생의 이미지와도 긴밀히 연결된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쿠사나기 역시 물속에서 나와 인형사가 보내는 메시지를 듣는다.

그 메시지는 마치 하늘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계시처럼 다가온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통하여 보듯 희미하게 보나..
(고린도전서 13장 12절 인용)
<인형사>

결국 쿠사나기 소령은 인형사와의 만남에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전투 도중, 진화의 단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헤켈의 생명나무 벽화를 넘어서는 장면을 통해, 기존의 생명 진화 단계를 초월하는 새로운 진화의 문턱에 도달한다.

이윽고 인형사와의 ‘다이브(접속)’에 성공함으로써, 두 불완전한 존재는 하나로 융합되어 새로운 초월적 존재를 탄생시킨다.


이 만남은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완전성을 향한 진화의 결정적 순간이다.

불완전했던 두 존재는 이 융합을 통해 마치 삼위일체적 완전성을 갖춘 존재로 거듭나며, 진화의 여정에서 마침내 완성에 도달한다.

그리고 인간은 이제 불완전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를 벗어나, 시공간을 초월하는 신(God)의 단계로 나아간다.


아이 때는 말하는 것도 생각도 논리도 아이 같지만, 어른이 된 후엔 아이 때의 것들을 버렸노라(고린도전서 13장 인용)
<공각기동대>

1995년 공각기동대의 영감은, 결국 실현 불가능해 보였던 상상이 현실로 기울어가는 시대인 2025년 오늘날을 관통해 미래로 뻗어나가고 있다.

쿠사나기 소령만큼은 아니더라도, 디지털 기기와의 결합을 통해 고성능의 트랜스휴먼이 등장하고, 인공지능 로봇이 일상에 들어오는 일은 이제 단지 ‘언제’의 문제일 뿐이다.

인공지능 챗봇인 ChatGPT의 출현은 우리가 막연히 우려하거나 기대하던 미래가 예정보다 훨씬 더 빨리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혹시 이 세대 안에서 기술적 특이점은 도래하게 될까?

그리고 그 특이점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정과 의지마저 모방할 수 있을까?

결국 인형사처럼 인간과는 다르되,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생성된 ‘유사 고스트’를 만들어내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흡수하거나 대체하려 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 존재가 인간인지 아닌지, 자아가 있는지 없는지 같은 정체성 논란은 미래에도 아마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확실한 건 단 하나다. 역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든 지능이 더 뛰어난 존재가 덜 뛰어난 존재를 지배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든 ‘생명’이든, ‘자아’든 ‘고스트’든 — 그것이 무엇이라 불릴지는 결국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의 공각기동대는 1995년의 SF에서 2025년의 과학 다큐멘터리로 바뀌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1995년 공각기동대가 끝내 보류했던 — 증명할 수 없는 생명체의 본질에 관한 인형사의 질문 — 그 해답은, 인류가 진심으로는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들이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을 터이나 쇠와 진흙이 섞이지 아니함같이 그들이 서로에게 달라붙지 못하리이다.
<다니엘서 2장 4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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