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Feb 2025
전업주부인 어머니한테서 나름 안정적인 육아를 제공받으며 학창 시절을 평범하게 지내온 것 같은데, 사람에 대한 불신은 어디에서부터 왜 생긴 걸까. 모든 사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너무 견고해 변명의 여지도 제공하지 않는 그 불신과 약간의 혐오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해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저 거절당할 때의 상실감에 남들보다 예민해 먼저 다가가지 못할 뿐인가. 고등학생 시절 친구 관계를 제대로 만들어보지 못한 탓인가. 그냥 뭐가 어찌 되었든 혼자 있는 게 편하고 대체로 항상 바쁜 사람일 뿐일까. 그저 21세기 통신과 SNS에 적응하지 못하는 옛사람일 뿐일까. 역시나 고민해 보았자 명확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아침 운동을 하며,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가끔 이유 없이 떠오르는 이전 직장에서의 에피소드가 있다. 생각을 해봤자 현재의 나에게도 미래의 나에게도 그다지 영양가가 있지 않아서 굳이 불러들이지 않아도 되는 류의 생각인데,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때가 있다. (이런 데에 내 ATP가 낭비되는 게 너무 아깝고, 이런 류의 회상으로 내 synapse와 변연계의 회로가 공고해지는 자체가 싫은데, 아뿔싸 내 의지로는 또 조절이 되지 않는다.) 오늘 새벽에도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는데, 운동하며 생각해 보니 이 또한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라, 예전에 있었던 일도 그 일에 대한 기억과 그 일에 대한 기억에 대한 나의 반응도 나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더라.
생각보다 내가 의지로, 노력으로 바꾸거나 조정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내가 어찌할 바 없는 일이 참 많다는 걸,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 참 적다는 걸 피상적으로는 항상 알고 있었음에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내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그러면서도 재미와 꿈, 희망을 놓지 않는 것. 나의 노력으로서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 아주 희소하기에 그 가능한 변화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 그게 내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임을 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비우고 싶어 허튼 것들에 시간을 쓰고, 영어 공부를 하고,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고, 이후 실컷 낮잠을 자고 나니 생리가 시작되었다.
아, 2025년 2월 분의 premenstrual syndrome은 이렇게 끝나는구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