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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되지 않는

by 코코맘

꾸준히 나를 괴롭히는 특정 종류의 '가족 문제'가 있다.

나의 의지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아 분노와 좌절을 반복하곤 한다. 직장 일에 또는 운동에, 하루하루 생활에 몰입하다 보면 잊히는 때가 오는데, 그런 때에 나는 나 자체로 있을 수 있다. '가족 문제'가 있는 "문제 있는" 내가 아닌 그저 나로 있을 수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무슨 이유에서건 (주로 일이나 운동이나 일상에서 몰입도가 떨어지는 때에) 그 '가족 문제'가 또 나한테 가깝게 다가온다. 이렇게 말하는 거 같다. "안녕, 나야 그 문제. 잊고 있었니? 우리 항상 함께 했잖아. 너는 이런 문제가 있는 사람인데, 그걸 잊고 지냈다고? 놀랍네 놀라워."


'가족 문제'를 또 만난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인다. 잠깐 무너지거나, 조금 더 오랜 시간 무너져 있거나.


지난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가족 문제'를 질병 유병률(prevalence)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만일 이 문제의 유병률이 30만 분의 1이라면, 그래서 전체 인구 30만 명 중 한 명에서는 반드시 발생해야 한다면, 그런데 하필 그게 나의 가족에게 생긴 거라면. 29만 9,999개의 황토색 모래알 속에 숨은 1개의 파란색 모래알이 우리 가족일 뿐이었다면. 아, 이 얼마나 간단명료한 설명법인가! 나의 죄책감도, 그동안의 얽히고설켰던 감정도 모두 내려놓고, 그저 확률 게임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Random 하게 생기는 특정 컨디션 뽑기에 당첨된 것뿐이라면.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 수 십억 사람들이 모두 각자 몫의 '불행' 뽑기를 한다 생각해 보자. 커다란 투명 플라스틱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불행' 캡슐을 하나씩 뽑는 거다. 그 캡슐 안에 든 불행이 얼마나 큰 것일지, 얼마나 더 많은 종류의 세부 불행 항목을 초래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각자 '하나씩' 뽑는 거다. 나도 그냥 하나 뽑은 거다. 그 안에 저 '가족 문제'도 들어 있을 뿐이다. 캡슐 안에 들어 있는 불행의 종류도 크기도, 속발하는 'sub불행'의 형태도 모두 다르지만, 우리는 그런 것 알지 못하고 그저 하나의 캡슐을 뽑을 뿐이다. 캡슐 안의 불행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느끼는 정도도 역시 사람마다 다를 지어다.


이 두 가지 생각이 1주일 정도 나의 마음을 잠잠하게 했다.

헌데, 스스로 기발하다 생각했던 나 위로법이 지금 보니 썩 기발하지도, 효과 있지도 않아서 과거의 나를 그저 비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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