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송 Feb 22. 2023

#1. 아직 서사에 불과하지만,

첫 번째 수기


  2023년 2월을 기준으로 10년 11개월째 춤을 추어오고 있다.


  무용에는 다 유형의 춤이 있다. 가령 외국무용으로는 발레, 현대무용이 있고, 한국의 무용으로는 한국전통무용, 한국 창작무용 등이 있다. 이외에도 대중춤, 사교춤 등 세상에는 많은 춤이 존재한다.


발레/한국무용/현대무용
훌라춤(하와이)/바라타나티암(인도)

  나는 이 중에서 한국무용을 전공으로 하고 있다.

전통춤도 추고 창작춤도 추고 있다.


 

 2012년 11살에 ‘리틀엔젤스 예술단’의 입단과 동시에 한국무용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술 중. 고등학교를 거쳐,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춤 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이른 나이에 시작하여 총 11년의 무용 인생을 살아왔다. 어찌 보면 이제 막 본격적으로 무용수의 삶을 시작한 새내기이지만, 내 나이의 반 이상을 춤과 함께 보낸 이 시점에서 나의 춤 역사를 짧게나마 기록해보고 싶었다.








  현재까지 춤과 함께하는 과정 속에서 크고 작은 변화의 순간들이 참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


  나는 인생에서 부모님과의 만남만큼이나 춤 인생에서는 스승과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춤인 한국무용은 구전으로 전승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나의 춤이, 나의 예술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 많은 춤꾼들은 스승을 통해 춤을 습득하고 익히며 자신만의 예술로써 발전시켜 나간다. 감사하게도 나는 현재까지 춤을 배워오면서 여러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나며 춤 세계를 넓혀왔다. 현재도 배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여러 선생님이 곁에 계신다. 이것은 내가 계속 춤을 출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자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이끄는 큰 힘이 된다.



  2020년, 19살은 잊을 수 없는 해로 기억된다. 한마디로 춤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가 생긴 시점이다. 그 해, 현재 나의 스승님이신 ‘한혜경’ 선생님과 춤 인생을 함께하게 되었다.



  먼저, 한혜경 선생님은 우리 전통춤계에서 ‘전설적인 여성 춤꾼’으로 자리매김하여 있는 우리 시대 대표 여성 춤꾼이시다. 개인적으로, 선생님의 전통춤에 대한 애끓은 열정은 우리 시대를 지나 미래시대에 우리 춤 문화유산으로 길이 남을 교본의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에 대해서는 중학교 때, 소고춤을 배우게 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최종실류 소고춤'이다.) 춤에 있어 실기적인 역량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그 당시에는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알지 못했고, 전통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지금은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지만,) 그래서 ‘한혜경’ 무용수에 대해서, 따로 인터넷으로 찾아보거나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뛰어난 실력으로 유명하신 그분이 누구실까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 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해 첫 시간표를 받았던 날이 떠오른다.


한혜경, <십이체장고춤>


십이체장고춤은 김취홍-오천향-한혜경, 3대로 전승되어 105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역사가 깊은 춤으로 12가지의 자연과 새, 인체를 소재로 한 열두 가지의 독특한 춤사위를 기본으로 이루어진 춤이다. [한혜경]



  모든 게 새롭고 낯선 고등학교 1학년 새내기에게 '한혜경'이라는 익숙한 성함은 그렇게나 반가울 수 없었다. 궁금함과 기대감을 안고 첫 수업에 들어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연세가 많으셔서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 눈엔 50대처럼 보이셨는데, 당시 선생님의 연세는 68세셨다. 한혜경 선생님은 3대로 전승되어 105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역사가 깊은 춤인 '십이체장고춤'을 계승하고 계신 분이다. 선생님께 첫 1년 '십이체장고춤'을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살풀이춤’을 배웠다. 그 당시를 상기시키면 서서히 선생님의 춤사위 그리고 전통춤에 매료되어 가는 어린 나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선생님을 만나면서 전통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고, 지금은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 그 이상이 되었다.


  선생님께 2년 동안 춤을 배우면서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 전통춤에 대한 열정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그동안 나는 동기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학생들 중 한명일뿐이었다. 수업시간에 더 많이 봐주시거나 특별히 신경 써주신다거나, 드러내지는 않으셨지만 2학년이 시작될 무렵부터 선생님의 눈빛에서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느껴졌다.


  그렇게 행복하게 열정적이게 춤을 배웠다. 입시 준비로 인해 선생님께는 2학년까지밖에 배울 수가 없는데, 수업 마지막 날에는 아쉽고 슬픈 마음을 도저히 숨길 수 없었다. 눈물이 터지고 만다. 이날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입시가 끝나면 선생님을 찾아가 춤을 배워야겠다고. 그렇게 선생님과 눈물의 이별을 하였다.     

 







  그 후 고3 입시생이 되었고, 1년 동안은 전통춤과 잠시 작별을 할 거라 생각했는데. 대학 준비를 위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입시 상담 다음 날, 부장 선생님께서 한혜경 선생님께 '살풀이춤'을 준비해 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믿기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마음을 아셨던 덕분인지, 부탁을 흔쾌히 수락해 주신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과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날이 나의 춤 인생의 전환점이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다.

      



  전통춤을 계승하고자 하는 나에게 선생님께서 추시는 전통춤에서 보여주는 맛과 멋은 큰 귀감이 된다. 전통춤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마음을 가지신 선생님께 춤을 배우면 배울수록 이러한 선생님의 모습이 내 생각과 마음에도 변화를 주는 것 같다. 선생님의 춤을 통해 우리 춤만이 가지고 있는 흥과 한, 멋을 알게 되면서 전통춤 계승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게 되었고, 이후로 나도 전통춤에 대한 무한한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살풀이춤’으로 전통춤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고, 산생님께 전통춤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웠다. 여전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아쉽게도 전통작품을 보는 대학에 시험을 보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전통춤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입시를 위해 준비했던 선생님과의 레슨이 끝이 났고, 나는 이화여자대학교의 합격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선생님께 춤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합격한 날, 바로 '십이체장고춤 보존회'의 소속이 되었다. 입시의 끝을 시작으로 선생님과 함께 전통춤, 그리고 십이체장고춤을 바르게 계승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십이체장고춤



  전통춤에 대한 애정이 많아서인지 현재 한국무용의 창작이 발전되면서 전통의 중요성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참 안타깝게 느낄 때가 많다. 한국무용은 한국적인 춤의 근본 원칙과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전통무용을 춤의 뿌리라고 볼 수 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제한적이었던 움직임이 확장되고 버선을 신지 않고 맨발로 춤을 추는 등의 다양한 시도들이 생겨났는데, 이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는 발전이자 좋은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창작무용 또한 전통적인 호흡과 움직임 등 춤의 특징을 바탕으로 표현돼야 하는데 이러한 중요성이 많이 약화되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한국무용의 기본이 되는 전통 호흡과 감정, 표현들은 전통무용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무용을 필수적으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춤의 뿌리를 제대로 알아야 현대라는 이름에 우리 몸짓을 정체불명의 춤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무용의 맛을 낼 수 있어야 창작무용도 좋은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움직임이라는게 명확하게 구분되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지점인 것 같다.



  모든 춤이 그러하겠지만 우리 춤은 섬세한 부분이 모여 빛이 나는 춤이 된다고 선생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신다. 우리 춤은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을 중시하기보다 내면에 더 집중하는 특징을 지니기 때문에 섬세한 호흡, 시선처리, 움직임 등이 표현될 때 더욱더 빛이 나는 춤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무용이 우리 춤의 뿌리가 되는 전통무용을 바탕으로 우리의 전통을 바르게 계승하면서도 자유로운 표현까지 할 수 있는 창작무용으로도 발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또한 창작춤을 추면서도 전통춤 공부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한혜경 선생님께 춤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전통춤을 추고는 있었겠지만, 지금과 같은 마음이었을지는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므로 당시 선생님께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신 가족과 고등학교 부장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을 절대 잊을 수 없다.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 춤 인생 중 고등학교 3학년의 시절은 가장 특별한 해이다. 현재의 나는 아직 춤에 대해 특정하고 가시화할 수 있는 능력과 내공을 갖기엔 멀었지만, 춤을 출수록 우리 춤만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과 깊이감이 어렴풋이 느껴지고 보이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을 열심히 갈고닦아 전통춤을 바르게 계승, 발전시키면서, 우리 한국춤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국내의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고, 더 나아가 세계에까지 널리 알리고 싶은 꿈을 안고 있다. 앞으로 춤길을 걷는 좁은 길에는 여러 반전과 굴곡이 내 앞을 가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춤을 사랑하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아갈 것이다.        



花無十日紅 화무십일홍

“나는 춤을 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꽃은 십일이 되면 붉음이 사라지지만, 춤은 영원히 남는다. 세상의 모든 꽃은 곱게 피웠다가 열흘을 넘지 못하나 꽃보다 아름다운 춤들은 찬바람 무서리에 더욱 무르익어서 날이 갈수록 더욱 붉어지나니 누가 춤추는 인생을 꽃과 같다 하리오.

-임정 한혜경



유튜브: http://www.youtube.com/@yunseo_5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