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로버티기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굴곡이 진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 피아노는 부잣집에서만
거진 가능했다.
일곱 살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철도청에 근무하다가 퇴직한 할아버지
밑에서 다소 유복하게 자란 그녀와 나는
동갑내기 친구였다.
천국의 계단처럼 올라가는
이층 집의 그 애는 나보다 키가
많이 작고 아담했다.
돈 많은 황 씨 할아버지는
그 당시 키도 훤칠한 데다 얼굴까지
잘생긴 편에 속했다.
황 씨 할아버지는 인자한 성품을 지녔다.
그분이 마당을 지나갈 때
마주치기라도 할 때면
내가 인사를 곧잘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웃으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새터에 다세대주택을 많이 지어
이웃주민들이 많았다.
작고 귀여운 그녀는 내가 이 집에
산지 오래지 않아 이사를 왔고,
우리 집 앞마당을 통과해야
계단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할아버지 할머니
이층 집으로 갈 수 있었다.
하루는 나의 인자한 엄니가 부엌에서 밥짓고 있는데
이층 집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나와 그녀의
두눈이 딱 마주치게 된다.
나는 밥솥에 밥을 퍼담고 있는 엄니께
" 엄니 친구가 있는데 먹을 것을
나눠 주고 싶어요"라고 말하면서
갓퍼담고 남은 솥단지안에서
구수하고 노릿노릿하게
잘 익은 누룽지를 떼어 한입 먹어보고는
그녀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속으로는 누룽지를 안 먹으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그녀는 다행히 웃으면서 누룽지를 잘 먹었다.
그래서 우리 집 앞마당을 지나쳐서
계단을 오를 때마다
누룽지를 준비했다가
내밀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어느덧 다정한 소꿉친구가
되어 있었다.
낮에 놀던 그 친구가 어느 날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걱정이 되어 그녀가 나타나기만을
바랬다.
드디어 나타났다.
유치원에 다니게 되어서
말하자면
나랑 잘못 논다는 이야기였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부지께 이 층집 그녀와 같은
유치원 보내달라고 떼쓰기 작전은 형편상
펼치기 어려웠을테니까....... "".
미취학아동에서 같은 초등학교를
들어가게 되었다.
이상하리만큼 그녀와 나는
단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었다.
집에서 무료하게 여러 동작들을
표현하면서 놀고 있는데
예쁜 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나는 어디에서 나는 소리일 거나
하고는 동선을 따라가니까
계단을 타고 오르는 이층집 거실에서 울렸다.
그녀가 맑은 소리로 엘리자를 위하여 월광소나타와
소녀의 기도를 치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환상적이던지
나는 그녀의 피아노 건반 두드리는 소리가
다 끝날 때까지 피아노선율에
심신을 기댄 채 맡기고 있었다.
나의 온몸에 전율이 아름답게
일어나고 있었다.
아부지 엄니께 선언을 했다.
"피아노 학원 보내 주세요"
아부지는 매정하게 거부를 했고
엄니는 미안함에 타들어가는 속을 애써
누그리면서 나중에 보내줄 게로
일단락 지었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그녀의 피아노 연주소리에
맞추어 멜로디도 짓고 찬장에 남은 여분을 피아노
삼아서 열심히 열손가락춤을 추고 있었다.
어느덧 사춘기 시절에 접어들고 있었고
피아노에 대하여 까마득히
잊고 지낼 무렵 즈음에
그녀는 먼저 이층 집에서 이사를 나갔고,
우리 집도 지금보다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부지께서 병환으로 눈감으시기 전에
"정화야! 아빠가 미안하다. 그렇게 찬장을
피아노 삼아 치고 싶을 정도인데 너의 바람을
들어주지 못해서 말이지".
맙소사! 나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 작은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부터는 찬양하면서 피아노와 더욱 가까이에 두면서
지냈고 무엇보다도 자주는 아니지만
그때는 피아노가 많이 귀한 시절이라
예배 끝나고 쉬는 시간에 틈틈이
뚱땅거릴 수 있었다.
언젠가는 내 힘으로 피아노 치리라는 굳센 다짐과 함께
지금 그 추억으로 보석처럼 아낀 시간들을 모아
빛난 꿈을 이루고서
현장에서 문예의 꽃을 피우듯이
신진예술인으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