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라는 세계

by 은하

뮤지컬은 내가 4년 째 좋아하는 취미이다. 채 몇 달도 가지 못한 수많은 취미들을 생각하면 정말 오랫동안 사랑하고 있는 분야다.



뮤지컬과의 만남

뮤지컬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친구가 뮤지컬 입시를 시작하면서였다. 뮤지컬을 배우기 시작한 친구는 들어보라며 카톡으로 매일 같이 자신이 배우고 있는 넘버(노래)들을 보냈다.

처음엔 귀찮기도 했고, 나에게 뮤지컬은 학교에서 보러간 청소년용 뮤지컬 뿐이었기에 뮤지컬은 유아틱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다음에 들어보겠다며 미루고 미루던 중에 '한 번 들어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친구가 보낸 영상을 클릭했다. 난 그 순간이 내 인생을 바꾼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들어본 넘버는 뮤지컬 위키드의 'popular'였다. 지금 뮤지컬을 정말 좋아하는 것 치고 처음 들은 넘버의 감상은 '별로 마음에 안 든다.'였다. 앞뒤 맥락 없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 채 들은 노래에서 또래와 달리 화장 한 번 안 하는 나는 엘파바처럼 느껴졌고, 그렇기에 해당 영상만 봤을 땐 글린다가 엘파바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싫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찌됐든 친구는 계속 새로운 영상들을 보내왔고, 나는 가끔은 그 영상들을 클릭해보게 되었다. 그렇게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 뮤지컬 넘버들이 조금씩 쌓이고, 나도 계속 듣다보니 마음에 드는 넘버들이 생겼다. 그 당시 마음에 들었던 넘버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마음에 안 들어했던 'popular'와 같은 뮤지컬 위키드의 'defying gravity'였다. 그렇게 '대성당들의 시대', '나의 길' 같은 넘버들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왔고, 위키드에 대해 찾아보며 상황을 알게 되자 꺼려했던 'popular'도 신나게 따라부르게 되는 넘버가 되었다.



나의 첫 뮤지컬

또 다른 전환점은 나에게 있어 제대로 된 첫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는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을 보게 된 일이었다. 해당 뮤지컬은 넘버 '나의 길'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마침 웨이브에 영상이 있단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영상을 시청했다.

새벽녘까지 영상을 본 나는 영상이 끝나자 배우들도 없는 집 거실에서 혼자 박수를 쳤고. 원래라면 관심도 가지지 않던 크레딧 영상까지 집중해서 시청했다.


비록 현장에서 본 것이 아니었지만 이 경험은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렇게 나는 뮤지컬 넘버를 더 자주 듣게 되었고,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해 더 많은 넘버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뮤지컬을 직접 보는 일은 아직 없었는데. 가격이 비싸기도 했고, 공연을 직접 본다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기도 했다.



첫 관극까지의 우여곡절

그렇게 영상으로만 뮤지컬을 접하던 중.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처음으로 홍광호 배우의 데스노트 영상을 보게 되었다. 댓글을 보니 유명한 영상이라는 걸 알게 됐고, 친구와 얘기하던 중에 데스노트가 공연 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당연히 친구와의 대화는 "볼까?" 하는 이야기로 이어졌고. 그렇게 친구와 유명한 홍샤 페어를 보기로 날짜를 정했다.

유명한 페어였고, 공연 자체도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공연은 당연히 매진이었다. 뮤지컬의 인기도 잘 모르고, 티켓팅 시기도 모르던 나는 무작정 매일 예매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계속한 결과, 3층 1열의 연석을 잡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기적 같은 일인 것 같다. 홍광호 배우의 공연을, 심지어 연석으로 잡다니!

처음 공연을 예매하는 나는 무통장 입금에 대해서도 알지 못해 표를 놓칠 뻔도 했지만... 가까스로 친구에게 물어 무사히 공연을 예매할 수 있었다.

한 번 예매를 해보니 그 다음은 훨씬 수월했다. 그 사이에 또 보고 싶은 공연이 생긴 나는 박은태 배우의 웃는 남자를 예매했다.

먼저 예매한 건 데스노트였지만, 공연 일자는 웃는남자가 더 빨라 내 첫 관극은 웃는남자가 될 예정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 날짜만을 기다리던 중. 큰 위기가 닥쳤는데, 바로 코로나였다.

웃는남자를 보기 약 4일 전, 데스노트를 보기 8일 전의 일이었다.

웃는남자를 보는 건 일찌감치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공연은 한참 남아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문제가 됐던 건 8일 남은 데스노트였다.

열도 나고 목도 아파 병원에 가 검사 받았는데, 나온 결과는 음성이었다. 격리일은 7일, 공연까지 8일. 당일에 확진을 받지 못하면 데스노트마저 볼 수 없게 된다는 생각에 나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던 친척에게 물어보고, 저녁까지 하는 병원까지 찾아간 결과 다행히도(?) 확진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첫 뮤지컬은 데스노트가 되었다.




공연장에서


처음 방문한 공연장은 나에겐 신세계였다. 티켓 수령, 포토존, 캐스팅 보드, 모든 것이 새로웠고 하나하나의 경험들이 설렘을 더해주었다.

공연 시작 전 객석에 앉아 듣는 악기 튜닝 소리는 지금까지도 날 설레게 한다.


합창으로 시작하는 첫 넘버부터 나는 그 웅장함에 눈물이 났고, 보면서 계속 감탄한 기억 뿐이다.

공연이 끝나고는 무엇 하나 잊고 싶지 않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메모장에 기억나는 장면과 대사들을 적어갔다.

그렇게 내 첫 관극은 내게 깊은 여운을 남겼고, 결국 데스노트의 경우 표를 하나 더 잡아 소위 말하는 회전문을 돌기도 했다.



뮤지컬을 보는 것에서, 뮤지컬을 직접 만들어보기까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뮤지컬을 좋아했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배우로 무대에 서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뮤지컬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 생각이 수능 후 뮤지컬 드라큘라를 보고 바뀌었다. 드라큘라는 극은 내게 매혹적으로 다가왔고, 처음으로 인물을 직접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능이 끝난 후라 망정이었지, 더 어릴 때 봤다면 뮤지컬 입시를 하겠다고 집안을 뒤집어놨을지도 모를 정도로 그 열망이 강했다.

다행히도(?) 수능을 본 나는 입시를 새로 하기보단 뮤지컬 동아리에 들어가고, 또 따로 노래를 배우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안일한 생각이었지만 입시에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았던 편이기에 당시에는 진심으로 그렇게 막연하게 뮤지컬 배우를 꿈꿨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오디션 공고에 지원서를 제출하려 들기도 했다.(지금 생각하면 제출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인 것 같다.)


어쨌든 그런 내가 대학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봤던 건 '뮤지컬 동아리의 유무'였다.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신기해한다.)

다행히 내가 지원해볼만한 학교들에 뮤지컬 동아리가 있었고, 나는 그렇게 뮤지컬 동아리가 있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우리 동아리는 학공임에도 퀄리티가 좋은 편이라 동아리 가입 전에 본 공연은 나에게 설렘을 더해주었다.

3월 중순, 드디어 동아리 입부 오디션 공고가 떴고. 나는 당시 노래를 배우던 학원에서 오디션 준비를 도와달라고 할 정도로 긴장해있었다.

안내 문자가 오기 전까지 매일 긴장하며 에타에서 결과가 나왔는지 글을 찾아보다가 합격 문자를 받았을 땐 정말 기뻤다.


그렇게 들어간 동아리 생활 또한 나에겐 정말 만족스러웠다. 배우를 꿈꿔도 여전히 내성적이었던 나는 사람과 잘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친절한 선배들 덕분에 학교 생활이 정말 즐거웠다.


그리고 정기 공연 준비 기간이 되고 오디션 공지가 올라왔다.


동아리 입부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정말 긴장해있었다. 오죽하면 지원자가 적어 합격 가능성이 50퍼센트 이상이었는데도 그랬다. 열심히 준비한 결과 내가 지원한 배역에 합격했고, 그렇게 연습이 시작되었다.


우리 동아리는 학교 공연장 특성 상 소극장 극을 올리는데(아마 이건 다른 학교들도 같을 것 같다), 대극장 극만 보고 소극장 프로 공연은 영상으로도 접해본 적 없는 나에게는 매우 낯설었다. 공연을 보는 것과 연기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는 것, 내가 내 실력에 대해 자만하고 있었다는 것을 연습 기간에 처음 느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꽤 힘들었지만 연습은 계속됐고. 시간이 흘러 나는 처음으로 무대에 서게 되었다.



무대라는 공간


모두가 그러겠지만 2달 넘게 연습을 했어도 무대에 서기 전에는 너무나 긴장이 됐다. 무대 뒤에서 괜히 팔을 흔들고, 소리가 나지 않게 콩콩 뛰며 긴장을 풀려 애썼다.


무대가 끝나고, 배우들이 나와 인사하는 커튼콜 직전. 솔직히 무대에 다시 나서는 게 두려웠다. 나는 나의 부족한 점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인사를 할 때 박수 없이 고요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앞에 나서서 인사를 하자 관객석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순간만큼은 나를 짓눌러왔던 불안과 자기혐오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무대를 비추는 조명 탓에 어두운 객석은 흐릿하게 보였지만. 난 그 장면을, 그 때의 감정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그 기억이 힘들었던 연습 기간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무대를 열망하는 이유가 아닐까.


여전히 무대라는 공간은 긴장된다. 실수할까 두렵고, 내가 잘 하지 못할까봐 무섭다.

그럼에도 나는 무대에 다시 서고 싶다. 무대가 끝나고 느꼈던 그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

언젠가 다시 무대에 서게 된다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내 모든 걸 다시 한 번 쏟아낼 수 있기를.



현재


나는 여전히 뮤지컬 동아리에서 공연을 올리고 있다. 배우가 아닌 스텝으로 참여 중이지만 이 또한 나에겐 너무 소중한 경험이고 추억들이다.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다시 찾아오지 못할 순간들이기에 한 번 한 번의 공연이 나에겐 너무나 소중하다. 농담으로 대학 졸업할 때까지 계속 공연을 할 거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어째 요즘은 거의 90퍼센트 정도의 확률로 실제가 될 것 같다.)

나는 계속해서 무대와 함께 할 것이다. 무대 위에 서든, 객석에서든. 앞으로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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