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중에 어제 듣던 목소리가 들려 뒤 돌아보니 어제 본 그 사람이다. 오늘의 대화는 “지금 아빠가 화장실에
가야 되니 오른쪽으로 가자.”였고, 어제의 대화는 “산보는 나오긴 했는데, 비가 와서 걱정이다. 목욕을 해야 하는데 엄마가 아파서 어떻게 하지”였다. 반려견과 한 성인 남성의 대화 중 일부분인데, 그냥 보지 않고 들으면 아버지와 자식과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반려견과 나누기에 기억이 됐다.
얼마 전 라디오 방송의 상담 프로그램에서 사람들과 직접 대면해서 대화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내용을
들었다. 시어머니가 할 말이 있어 찾아오셨는데도, 얼굴을 보며 말을 하기 힘드니 돌아가시라고, 그러면 대답은 문자로 하겠다고 했다는 어느 며느리의 상담 내용이다.
TV광고에서는 혼자 사는 어르신이 전자제품과 대화를 하며 도움 받는 장면도 있다. 카톡 등 SNS를 통해 나를보여주려는 듯한 게시물도 많이 본다. 가장 멋진 모습으로 멋진 장소에서 찍은 나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우리는 태어나면서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언어를 배우기 전의 어린아이는 울음과 웃음으로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듯하다. 배고프거나 몸이 불편하면 칭얼대다 해결되면 조용해진다. 그러나 말을 배우기 시작하며 '엄마, 맘마' 등 단어를 배우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며 소통하기 시작하는데, 아이는 그때부터 떼쓰는 것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소통은 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전적으로 마음의 벽을 허물고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다는 것이다.
나의 말만 하고 고집부리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서로 통해야 소통이다.
그런데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소통이 잘 안 되고, 하려고도 않는다. 가족끼리 식사시간에도 말없이 각자 휴대폰 보는 모습이 이제 일상이 됐다. 부부간에도 공통된 화제가 없으면 하루종일 몇 마디 하지 않고 지나간다. 물론 오랜 세월 같이 살아온 부부들은 대화 없이도 상대방의 의중을 알고 행동하지만, 간혹 서로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오늘 산책길에서 본 사람은 반려견과 대화하는 것일까? 반려견이 주인이 말하는 왼쪽 오른쪽을 알아듣고, 화장실이라는 단어를 이해하며 화장실 쪽으로 가는 걸까? 아니면 혼자만의 독백일까? 반려동물과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엄연히 다르다. 그래서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는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다고 믿고 말을 계속한다.
최근 우리는 간섭받기도 간섭하기도 싫어하며,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문화(?)로 바뀌어, 각자의 공간에서 컴퓨터나 휴대폰 혹은 반려동물과 대화하며 살아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소통을 하려다 불통이 되어 힘들어하느니, 차라리 사람과의 소통을 시도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언어는 인간이 만들어 낸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다. 일방적인 대화나 독백이 아닌 서로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 그런 소통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