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진 양말이 좋아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으니까
조금이나마 쓰레기 덜 버려 좋고
지구가 살짝 웃는 것 같아 좋아
새 양말이 자꾸 유혹해도
내 발은 이 친구가 더 편하다네
누군가는 말하지
좀 창피하지 않냐고
난 말해, 이건
구멍 난 철학이라고
해진 양말, 바람이 통하네
발가락이 세상 구경을 하네
숨통 트인 하루, 생각도 가벼워
해진 양말, 나랑 닮았네
완벽하진 않아도 쓸모는 그대로야
낡았다는 말 대신
잘 살아왔다는 말이 어울리지
아껴 신어 좋고, 기억도 남아
이 구멍은 작년 겨울 이야기
발 건강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양말 따라 인생도 돌아보지
명품이 흉내 낼 수 없는
그 나름 색다른 디자인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
단종된 나만의 라인
멀쩡한 걸 버리는 게
더 나은 삶은 아닐 거야
조금 해진 채로
더 오래가는 것도
그 나름 멋이 아닐까
해진 양말, 볼 때마다 말을 걸지
요즘 우린 너무 쉽게 얻고 쉽게 버린다고
머리보다 발을 먼저 생각하라고
잘 쓴 하루면 충분하다고
나는 해진 양말이 좋아
조용히 제 몫을 다해서
오늘도
내 발을 데려다주니까
우리, 쉬이 헤어지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