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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May 11. 2022

나를 길러낼 활자의 틈으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글을 쓰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4월과 5월, 산문집의 출간을 앞두고 이미 쌓아두었던 활자의 틈바구니에 갇혀 지냈다.

미리 적어 놓았던 글들을 고치고 다듬으며. 때론 부족한 문장과 문단 사이사이에 보다 알맞은 활자들을 새로이 채워 넣으며, 치열하고 분주하게 이 봄을 건넜다.


 출간을 확정 짓고 활자가 업이 된 순간, 내게는 욕심이 생겼다. 보다 더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 시작은 뭐니 뭐니 해도 좋은 문장이라고 스스로 다그치며 밤새워 글을 고쳤다.  

때론 건축가가 된 듯이 뚝딱뚝딱 문장을 지었다. 때론 정육점 주인이 된 듯 서걱서걱 문장을 쪼갰다.

다림질하는 세탁소 주인처럼 슥삭슥삭 문장을 펼쳐보기도 했다.

뚝딱뚝딱 서걱서걱 슥삭슥삭, 끊임없이 쓰고 지우고 고치다 보니 어느새 내 앞에 놓인 온갖 활자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탈고 후 일상으로 돌아와 출간을 기다리는 다소 여유로운 나날에도 이 감정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한동안이라도 활자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들로 일상을 채우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일상은 쉽사리  다짐을 지키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글쓰기로 돌아오기까지 더더욱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책 출간이 임박한 요즘, 다행히 도망의 의욕이 사그라들었다. 이제 다시 부지런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를 지탱해주던, 그리고 나의 길을 열어주던 '부지런한 글쓰기'를 일상으로 다시 데려올 수 있을 것만 같다.


'돌이켜보니 글을 쓰는 일은 결국 나 스스로를 기르는 일이었다.

내게 글과 밤은 언제나 함께였으므로, 결국 밤이 나를 기른 셈이기도 하다.'

 

 곧 출간될 책, <시선이 머무는 밤>의 서두에 나는 썼다.  

문장이 작가를 닮는 게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문장을 닮아간다고, 어느 노작가는 말했다.

아무래도 나는 나의 문장을 닮아가는 것 같다. 나를 길러낼 활자의 틈으로, 나를 길러낼 활자의 밤으로, 재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이렇게 다짐하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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