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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Apr 04. 2021

586세대 한국 정치 발전의 주역에서 걸림돌로 전락하다

시대유감

민주화의 주역 586세대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시인 김수영은 그의 시 ‘푸른 하늘을’에서 자유를 얻어내기 위해 감내하여야 하는 수많은 희생과 상실을 노래했다. 1960년, 4.19 혁명을 겪으며 느꼈던 감정을 담은 시인의 이 시는, 후에 있을 한국 정치 발달사에 대한 불행한 예언이 되었다. 4.19 이후에도 여전히 격동하던 현대 한국 정치의 지난한 발전과정 속에서 ‘자유 민주주의’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상실’을 대가로 이 땅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철옹성과도 같았던 박정희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면서, 드디어 실현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민주화는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의 등장으로 또 한 번의 좌절을 겪는다.

민주화를 열망했던 시민들은 좌절감에 빠져있을 새도 없이, 다시 끊임없는 투쟁을 위해 캠퍼스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80년의 광주에서부터 87년의 남영동과 거리 한복판까지, 수많은 이들이 뜨거운 피와 눈물을 흘렸다.

더러는 성했던 몸을 다쳤고 더러는 목숨을 잃었다.

이 중심에는 운동권 1세대로 불리는 586세대의 선배 세대와 586세대가 있었다.


 똑같이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원동력이 되었으나, 586세대는 그들의 선배 세대와 확연한 차이를 가진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독재정권을 끝낸 성공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 광주와 서울역에서, 신군부의 독재에 맞선 그들의 선배 세대는 피와 땀을 흘렸으나 직접적으로 민주화를 이루어내는 경험을 하지는 못하였다. 586세대는 선배 세대의 이와 같은 뼈아픈 실패를 자양분 삼아,

범국민적 전국적 봉기를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하였고 마침내 전두환의 독재를 타도하고 이 땅 위에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를 자리 잡게 하였다.


586세대, 한국 정치 발전의 걸림돌로 전락하다


 직접 운동권이 되어 민주화 쟁취의 선봉에 섰건, 그러한 운동권 학생들을 지지하고 그들에게 부채의식을 느끼며 영향을 받았건 586세대라 불리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중에는 현대 한국 정치의 걸림돌로서 작용하는 특성들도 많다. 필자는 이를 ‘집단주의 문화’ ‘도덕적 선민의식’ ‘이분법적 진영논리’ 크게 이 세 가지로 본다. 우선 그들은 유년시절부터 경험한 군사독재의 전체주의 문화와, 청년시절 경험한 반독재를 위한 집단적 연대문화에 영향을 받아 그들만의 ‘집단주의 문화’를 형성하였다. 또한 그들이 독재정부 이하 공권력이 자행한 극악무도한 부패와 폭력, 그에 대한 선량한 시민들의 저항을 직접 겪으면서 형성한 이분법적 선악 판단의 기준은 그들 스스로를 절대 선으로 규정하는 ‘도덕적 선민의식’을 갖추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집단주의 문화’와 ‘도덕적 선민의식’에 독재 대 반독재, 냉전시대 공산주의 대 자유주의의 이분법적 대립이 더해지면서 그들은 ‘이분법적 진영논리’를 형성하였다.

 

 586세대의 이러한 특성은 그들이 민주화의 후광을 통해 제도권 정치에 들어서면서 또다시, 한국 정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문민정부 때부터 제도권 정치에서 시작된 586 운동권 세력의 천거는 그들이 3,40대가 되던 2000년대 들어 정점을 찍었다. 이후 586 운동권 세력은 권위주의 독재정부 이후 보수화되었던 한국의 정치판을 뒤흔들었고, 입법과 행정, 심지어는 사법의 영역에까지 진보적이고 발전적인 변화들을 가져왔다. 소극적 복지를 기반으로 한 친기업적 정책노선은 적극적 복지를 지향하며 친서민적 정책노선으로 변화하였으며, 그간 인권을 탄압해오던 공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자유주의적 변화를 일구어냈다.

 

 그러나 그들의 특성은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그들 스스로를 한국 정치 발전의 걸림돌로 전락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들이 가진 ‘집단주의 문화’와 ‘진영논리’는 당파주의가 되었다. 이러한 당파주의는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소모적인 정쟁으로 흘러갔고 그 결과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국익보다는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는 한국 정치를 기득권 거대 양당에 번갈아가면서 맡기는 지금의 정국을 만들어,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군소정당들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지역주의를 비롯한 국민적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이에 더해 그들이 가진 ‘도덕적 선민의식’은 서로 다른 이념의 절충적 구현 과정인 정치를 선악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여, 자신들과는 이해관계가 다른 세력의 주장은 절대 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경청하지 않게 하여 협치는커녕 숙의민주주의의 기본적 구현마저도 가로막는다. 또한 동류의식을 가진 집단의 부정과 부패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중적 잣대를 갖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얼마 전 있던 ‘조국 사태’를 대하던 당사자와 여권의 태도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탈법이니 불법이니 하는 진실공방과는 별개로, 조국 법무장관 지명자가 살아온 삶의 궤적에는 분명히 특권과 반칙이 있었다.

2,30대의 청년층을 비롯한 대다수의 국민은 이에 대한 적극적 소명을 여권에 요구하였으나 돌아오는 것은 “검찰개혁의 적임자는 조국뿐”이라는 국민적 정서와는 괴리된 대답뿐이었다. 80년대 기득권의 부정의와 불평등에 대하여 준엄하게 꾸짖던 혈기왕성하던 586세대의 과거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586세대는 자신들을, 우리는 586세대를 뛰어넘어야 한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기득권 양당 586세대의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여당의 이철희 의원을 시작으로, 표창원 의원, 임종석 전 비서실장, 야당의 김세연 의원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곳곳에서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그들의 이러한 결심에는 물론 개인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당 안팎에서 요구하는 세대교체론에 영향을 받은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총선 때마다 등장하는 인적쇄신론이지만, 이는 20대 총선 때까지만 하더라도 새로운 인재의 영입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근래처럼 여야를 할 것 없이 세대교체가 인적쇄신의 주를 이룬 전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드물다. 그 과정 속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여권에서의 586세대 퇴진론은 변화되는 시대상과 ‘조국 사태’ 이후 그들이 보여준 586세대의 기득권화에 대한 융합적 반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동아일보가 2019년 11월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총선에서 586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보다 더 젊은 세대가 정치권에 유입돼 정치권에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80.5%가 ‘그렇다’고 답변했다는 점은 이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586세대는 그들 자신을, 젊은 세대는 586세대를 뛰어넘어야 한다. 민주화의 주역으로 존경받았으나 이제는 기득권과 동일한 의미가 되어버린 586세대는, 자신들이 누렸던 기득권 중 적어도 제도권에서의 힘을 내려놓거나 적어도 이를 사익이 아닌 국리민복을 위하여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자신들이 가진 문화적 특성이 한국 정치에 가져온 부정적 영향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젊은 세대는 586세대의 부정과 부패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동인으로, 세대교체를 이루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586세대가 보여준 ‘집단주의 문화’ ‘도덕적 선민의식’ ‘이분법적 진영논리’를 극복하여 지금의 거대 양당제에 균열을 내고 국민의 다양화된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한 여러 군소정당들로 세력화해야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다른 세력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토론하는 숙의민주주의를 구현하여 한국 정치에서의 건설적 진보를 이루어 내야 한다.


참고문헌

김정훈, 386세대 유감, 웅진 지식하우스, 2019
박원익, 공정하지 않다, 지와인, 2019
유시민, 나의 한국 현대사, 돌베개, 2014
김태윤 기자 외,「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우린 선 너흰 악" 386세대 DNA」, 중앙일보, 2019.09.25.
송상훈 기자,「'운동권 386' 제도권 정치세력화」, 중앙일보, 200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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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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