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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블리 Jan 27. 2024

무작정 제주에 살러왔습니다

겁쟁이 프리랜서의 무모한 제주살이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날도 난 쨍하게 내리쬐는 더위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여느 때처럼 방문 수업을 다니고 있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순간이 몇 번이 있었는데 분명한 건 더위때문은 아니었다.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내 뇌에서 강렬하게 신호를 보내고있었다.나에게 우울과 공황장애의 증상이 있다고 느끼게 된 건 몇 년 전쯤 이었던 거 같다.

가끔 숨이 쉬어지지 않는 증상들과 촉감에 대해 지나치게 반응하는 예민함 이런 것들은 내가 유별난 탓이라고 여기며 넘겨왔다. 지나친 긍정회로가 때로는 독이 되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깊은 상실감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원래 하던 일들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새로운 일을시작한 지 1년째 되던 날이었다 그날은 하루만 더 버티면 지나갈 것 같은 느낌이 아닌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은 한계에 다다랐다.난 30여 년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충동적인 결정을 해본 적이 없는 아주 재미없는 계획형 인간이다.

엄마 곁을 단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그런 내가 무작정 제주살이를 가겠다고 뱉어버렸다.


" 제주살이 "


이 단어를 나한테 붙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렵게 한결정이 단순히 제주에 대한 환상과 희망으로 포장되어 가벼워 보이는 것 같았다.아무렴 어때! 갑자기 나를위해 이런 결정을 결단력 있게 내린 나 자신이 대견해 미칠 것 같다.그 대견함에 취해 제주에 살러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예상외로 엄마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해줘야 하는  딸내미의 독립을 내심 기다리신 것인지

한편으로는 서운할 정도로 나의 첫 독립을 반기셨다.


사실 제주도랑 나는 인연이 좀 깊다. 30대 초반부터 우연히 제주에 일거리가 자주 생겨서 옆동네 드나들듯이 제주도를 가곤 했다. 그러다 몇 개월 정도를 일하면서 제주에 살게 된 적이 있는데그때의 제주가 참 좋았다.

계속 경쟁을 해야만 했던 서울의 삶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내가 무얼 하는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드는지 그 누구도 심지어 나조차도 신경 쓰지 않았다.제주에선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게 어떤 일이든 재미있는 도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게 내가 갑작스럽게 제주행을 결정한 큰 이유 중에 하나이다.

나에겐 새로운 환경이 너무나 필요했다.바다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 제주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난 36살의 나이의 첫 독립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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