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영화 리뷰

<퍼니 게임(1997)> -미카엘 하네케

Funny Games

by 김지환

인스타그램에 영화 매거진들이 생산되면서 매거진들 사이에는 불쾌한 영화를 모아 소개하는 일종의 트렌드가 존재했다. 이 매거진들의 소개로 불쾌한 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층이 SNS에 많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런 불쾌한 영화 중에서도 <퍼니 게임>은 매거진들이 모은 불쾌한 영화 리스트에 거의 대부분 들어가는 영화 중 하나이다.


일단 단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 영화에 대해서는 불호의 입장이다. 다만 전체적인 완성도에 흠이 있어서 영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영화의 완성도는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하다. 그와 동시에 영화라는 매체를 굉장히 잘 활용한 영화이기도 하다. 소름끼치도록 영리한 방식으로 말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관객에게 무력감을 전달한다.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단어인 '게임'은 실시간으로 행위자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지만, 영화는 그와 다르다. 영화관에서의 감상을 기준으로 할 때 영화는 일직선으로 흐르기 시작하곤 끝을 낼 때 까지 멈추지 않는다. 우린 잠시 멈추거나 뒤로 넘길 수 없다. <퍼니 게임>은 영화의 이런 점을 활용하여 관객에게 무력감을 준다.


파울은 일종의 절대자이다. 자신의 공간이 영화 속 세상임을 인지하고,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 그 문제의 '리모컨 신'에서 볼 수 있 듯 말이다. 파울의 입장에선 이 공간이 하나의 게임으로 작용되는 것일테다. 자신의 행위가 사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계획이 틀어지면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리 또한 게임의 참가자로서 이용되게 된다.


또한 초반부에 파울이 내기를 거는 장면에서 볼 수 있 듯, 이 영화의 끝은 결국 관객의 패배를 이끌어낸다. 집안의 세 인물이 그의 말대로 시간 안에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이 죽어가면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청자로서 그들을 지켜보는, 나쁘게 말하면 관음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일단 영화는 한 번 시작되면 반드시 끝을 봐야하기에, 우리는 끝이 날 때까지 그저 가만히 지켜볼 수 밖에 없다.


또한 이 영화는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미디어의 폭력성에 대해 탐구하려고 시도한다. 영화라는 매체는 사실 굉장히 직접적인 매체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각과 청각으로 즉각적인 감각이 들어오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 점을 활용하여 이 영화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폭력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관객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언제 올 지 모를 폭력에 대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영화는 그런 관객의 은밀한 감정을 우리에게 불러 일으킨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지루한 부분을 뽑자면 파울과 페터가 잠시 집을 비우는 장면이다. 그들이 지금 당장은 안전하다는 사실은 안심의 감정을 일으키면서도 폭력에 대한 카타르시스가 억제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참 영리하게 관객을 갖고 놀 줄 아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 붙은 인기는 이런 면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면 이 영화는 영화의 매체의 특징을 활용하여 폭력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비판하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정말 효과적이었을까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인 입장이다. 우선 나에겐 파울이 제4의 벽을 뚫는 방식이 굉장히 뻔하고 유치하게 느껴졌다.


관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암시하며 관객을 응시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일어난 일에 대한 충격의 세기를 떨어트린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무력감 내지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려 한다는 점에서 이건 사실 기만에 가깝다. 그렇게 큰 타격을 주지 못 한 충격에는 무력감보다는 그냥 관객한테 장난치고 있구나 하는 일종의 짜침이 먼저 느껴진다. 설상가상으로 앞서 언급했던 리모컨 신까지 합세해 정말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이다.


심지어는 파울이 본인의 입으로 스스로 영화라는 단어를 말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지점들이 가장 인위적이고 유치한 지점이며, 마지막 페터와의 대화에서 영화가 언급되는 부분은 정말이지 최악이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불쾌하다기 보다는 유치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기에 미디어의 폭력성에 대한 반성을 굉장히 강압적으로 들이미는 영화의 태도가 괘씸하다고 느껴지고 이런 면에서 영화의 의도는 실패한다.


관객의 무력감을 통해 불쾌함을 연출하는 영화로 <킬링 디어>와 <백치들> 또한 꼽을 수 있는데, <퍼니 게임>과 달리 나는 이 영화들을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킬링 디어>는 감독이 신의 위치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상황을 냉소적으로 관조하지만, 그 위치에서 벗어나 극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는다. 영화가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백치들>은 애초에 관객의 무력감을 의도로 한 영화라기 보다는 사실 도그마 95에 대한 회의감을 담은 일종의 메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마지막 카렌의 행위에 나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으며 이 영화의 처연함에 녹아들어갈 수 있었다. 영화를 통해 무력함을 느끼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차라리 이 두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이 영화도 나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었다. 영화가 굳이 제4의 벽을 깨려하지 않고 일직선이라는 영화의 특성을 활용하여 우리에게 무력감을 전달하는데 더 중점을 두었다면 어땠을까? 이 영화가 단순히 좋은 영화로 끝날 것이 아닌 걸작으로서 다가올 잠재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실패가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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