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영화 리뷰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데이비드 린치

Mulholland Drive

by 김지환

언제인가 영화를 다 보고 영화관을 나오는 기분이 아주 긴 꿈을 꾸고 깬 기분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제껏 여행했던 긴 여정의 잔상이 남아있는 몽환적인 상태. 일종의 여운으로 작용하는 이미지들. 이 모든 것들이 마치 꿈에서 깬 것 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고나서,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이 영화는 자신이 허구임을 숨기지 않는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영화의 전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는 중후반부 까지는 특유의 미스테리함을 유지시키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영화 속 세계를 바꿔버린다. 여기서 이전의 세계와 바뀌어진 세계의 경계선이 되는 극장 장면에서 영화는 자신이 허구임을 드러낸다. 존재하지 않는 밴드와 오케스트라, 실제로 연주되지 않는 트럼펫, 가수가 쓰러져도 계속 불러지는 노래 등 영화는 이런 장치들로 관객의 몰입을 깨트린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바뀐 세계에서는 베티의 현실로 가정되는 세계가 드러난다. 아마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객들이 전반부를 베티 (즉, 다이앤)의 꿈으로, 후반부를 현실로 해석할 것이다. 실제로 전반부에서의 세계는 베티의 이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고, 후반부에서는 그 이상을 빼앗기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단순히 꿈과 현실만으로 단정지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단 나는 1부에 해당하는 부분이 꿈이라고 생각한다. 윙키스 식당에서의 두 남자, 아담 캐셔의 이야기 등 표면적으로는 베티의 이야기와 관계 없는 이야기들이 영화에서 메인 스토리와 병치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화를 보다보면 무언가 톤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부분들은 2부에서 나오는 다이앤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부분들로, 자신의 기억 속의 이야기들이 어쩌면 조악한 방식으로 꿈에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선 2부를 현실로 보는게 합리적이겠지만, 나는 2부를 단순히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어떤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1부에서 이루어진 다이앤의 욕망은 2부에서 처참히 배신당하고, 다이앤은 정신 이상을 보이다가 결국 스스로 파멸하고 만다. 꿈으로 현실 도피를 하던 다이앤에게 자신의 소망이 짓밟히는 현실이 그녀에겐 진정한 악몽이다. 영화가 2부에서도 초현실적인 장면을 넣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이렇게 흘러가는 영화를 보고 있자면 이 영화를 관람하는 나마저 같이 악몽을 꾸는 기분이 든다. 1부에서의 미스터리함에 몰입하던 나는 셀린시오 극장 장면이 나오자 그 몰입이 깨져버린다. 그와 동시에 영화가 다이앤의 (부분적인) 현실을 보여주자, 나 또한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꿈 속에서, 영화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가 갑작스럽게 현실을 바라보게 된 그 지점은 악몽이라는 표현 이외에는 쓸 말이 없다. 이런 면에서 참 지독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있는 영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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