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으로서 완성된 그리움의 정서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된 동력은 나레이션이다. 에스트레야의 과거 회상으로 이루어진 나레이션을 통해 영화는 그녀와 아버지의 관계를 되짚는다. 이 방식이 영화의 것이 아닌 문학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금방 이 영화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나레이션 속에서 드러나는 아버지와 딸의 단절, 빛과 어둠의 부드러운 전환 등에선 빅토르 에리세 특유의 섬세한 연출을 볼 수 있었다. 상황을 설명하는 텍스트와 그에 알맞게 등장하는 영상은 하나의 물결을 이루며 이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이 영화는 빅토르 에리세의 다른 작품들처럼 도달할 수 없는 이상세계를 다룬다. 하지만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이 영화만의 특징은 그런 이상세계와 인물의 만남이 확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이 영화가 미완작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점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노스탤지어의 감각을 강화시켜 더욱 영화를 깊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남쪽>이 다른 작품들과 구분되는 이 영화만의 특징으로 작동되는 것이다.
아우구스틴은 과거의 공간인 '남쪽'을 그리워한다. 그는 그곳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에 집착하며 과거에 사랑하던 이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을 다시 되돌리려 시도한다.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은 모두 부정당하고, 이 지점에서 오는 그의 상실감은 가족을 회피하는 모습으로 영화에 드러난다. 다만 그의 이야기는 사실 이 영화의 메인으로 보기 어렵다. 이 영화에서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은 아우구스틴의 모습과 대구를 이루는 에스트레야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앞에서 서술하였듯이 에스트레야의 과거 회상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그녀의 나레이션은 극 중 에스트레야의 시점보다 더 늦은 시점이다. 이는 그녀가 남쪽이라는 공간으로 형성된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마치 그녀의 아버지가 남쪽의 세계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이런 식으로 현재와 과거가 병렬적으로 포개지는 구조는 그 그리움이라는 공간 자체를 형상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남쪽으로 가겠다는 다짐과 관객을 향한 응시로 막을 내리는 엔딩은 역시 미완성작으로 끝나게 된 영화의 필연적 결말처럼 보인다. 어쩌면 사람에 따라 우울한 결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난 이 영화가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이라고 단연 주장하고 싶다. 이 엔딩으로 인해서 그리움이라는 정서는 완전해졌고,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선 이보다 가장 잘 끝맺은 노스탤지어는 봐온 적이 없다. 물론 이를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런 점이 영화를 더욱 처연하게 만든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난 이 영화가 <벌집의 정령>이나 <클로즈 유어 아이즈>만큼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난 여전히 인물들의 안식처가 온전히 제공된 영화들을 더 선호하는 게 아닐까 싶다. 또한 여전히 이 영화가 문학적이라는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 영화는 걸작이며 관객들이 여태껏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이런 감각을 온전히 표현한 빅토르 에리세 감독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 4.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