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입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대리만족
영화는 필연적으로 관음적인 매체이다. 한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을 영화로 찍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 사건을 찍기 위해선 찍는 주체가 무엇을 찍고 싶은지 결정하고 그것을 카메라에 담아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찍는 이가 무언가를 보고자 하는 욕망 그 자체가 하나의 관음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스크린 위에 투사시킬 때, 관객들은 찍는 이의 시선으로 그 사건에 대해서 2차적으로 관음 하게 된다. 이런 면모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데자뷰>는 이런 면에서 <이창>의 새로운 비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건의 공간을 무한한 시점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백설공주'라는 특수한 장치는 영화라는 매체의 비유로서 작동하고, 이 장치를 조작하거나 보는 이들에게는 관음증이라는 키워드가 작용하게 된다. 그렇기에 그들이 장치로 클레어의 집을 뒤적거리는 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닐 테다. 다만 여기서 그쳤다면 <데자뷰>는 고작 <이창>의 리메이크 정도로만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데자뷰>는 거기서 더하여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하는 인물을 투여한다.
주인공인 더그는 굳이 따지자면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대입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관객들에겐 어떠한 사건을 영화로 볼 때 그것에 직접 개입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동한다. 위기의 상황에 놓인 주인공을 구해내고 싶어 하거나, 영화에 노출된 즐거움에 직접 동참하고 싶어 하는 마음 등으로 이런 면모가 부각된다. 더그는 클레어라는 인물에게 뭔가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를 관객의 입장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해할 수 있다. 더그는 클레어라는 과거의 인물을 사랑했고, 그런 마음이 그녀를 둘러싼 사건에 개입하여 그녀를 구하고자 한다는 마음으로 전환된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는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질베르토 페레즈의 책 <영화, 물질적 유령>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물질적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간 허상을 담는 유령에 가깝다. 결론적으로 관객은 그 세계에 개입할 수 없고, 개입하고자 하는 욕망은 충족되지 못한다. 하지만 토니 스콧은 영화 <데자뷰>에 한해서 그런 관객의 욕구를 일시적으로 허용하여 더그(관객)와 과거(영화) 사이의 벽을 허문다. 비록 더그는 그런 금기를 깬 대가로 목숨을 잃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과거의 세계를 바꾸는 데 성공한다.
세간의 평은 더그가 과거로 가는 파트를 일종의 사족처럼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다만 이 평은 개인적으로 핀트를 벗어난 평가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는 애초에 정교한 서사에는 관심이 없다. 더군다나 이 영화가 정말 서사에 힘을 썼더라면 정말 평범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과거로 갔기에 관객의 금기적 욕망이 잠시라도 충족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어떤 영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기에 후반부를 각본의 허점으로 보기보다는 영화적 스펙타클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 영화의 디지털 화면에 대해서도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의 주 소재인 '백설공주'의 화면은 디지털로 촬영되었고, 일반적인 장면들은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디지털 화면은 필름에 비해 압축이라는 존재로 인하여 변형이 생긴다. 이는 과거가 온전한 형태로 그들에게 투사되는 것이 아니라는 맥락을 부여하고, 그가 직접 과거로 갈 때는 과거의 공간이 필름화되어 온전히 그에게 보여진다는 것을 강조시킨다. 또한 중반부에서 과거의 화면과 현재의 화면의 연쇄로 표현되는 현재->과거로의 카체이싱 신은 단연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언스토퍼블>에서는 기차의 운동(사건)과 이를 담는 뉴스(영화)를 통해 각 주인공들의 가족 간의 트러블을 해결하는 모습으로 영화가 인물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모습을 드러내었다. 반면에 이 영화는 영화와 관객 간의 필연적 거리를 없애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인물을 보여주어 관객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하스미 시게히코가 말했듯 그는 운동으로서의 영화를 마주해 온 감독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는 메타 영화에 아주 큰 재능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언스토퍼블> 이후의 그의 영화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다고 느껴진다.
⭐️ 5.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