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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이지 Nov 02. 2021

[암밍아웃] 암이 내게 준 자유

2021년 나는 갑자기 암환자가 되었다. 다행히도 '착한암'이라 불리는 갑상선암이었지만, 내게 갑상선암은 그렇게 착한 암은 아니었다. 반절제로 끝날 줄 알았던 갑상선암은  측경부 전이로 인해 전절제와  좌측 곽청술을 하게 되었고, 5개월 후 동위원소 150큐리도 하게 되었다. 오늘은 동위원소 후 12일이 되는 날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수술 범위가 크고 동위원소를 고용량했음에도 그렇게 큰 휴유증은 없었다는 것이다. 곽청술한 목 부분의 뻣뻣함과 동위원소 후 입안이 헐고, 침샘염이 일어난 것을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아직 아기를 만날 수 없는 건 슬프지만 14일의 격리 기간을 해야 한다는 지침때문에 지금 나는 회사 근처에 에어비앤비를 얻어 생활 중이다. 병원, 요양병원과 엄마집에서 9일, 에어비앤비에서 9일. 이렇게 약 18일의 격리 후 나는 집에 가게 된다.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는 회사에서 30분 거리에 있다. 욕실, 주방, 침대가 적절히 배치되어 1인이 머물기에 최고의 조건이다. 첫날은 너무 피곤해 주변 산책 정도만 했고, 둘째날은 2시간 정도 걸어 이태원에 다녀왔다. 이태원에서 양갈비를 사서 숙소에서 구워 먹는데, 너무 맛있어서 남편에게 자랑아닌 자랑을 했다.


그리고 어제는 오랜만의 출근을 했다. 1시간 30분 걸리는 출근길이 30분으로 단축되니 삶의 질이 높아지는 기분이다. 갑자기 출근하자마자 그 동네 아파트 시세를 찾아봤는데, 이건 뭐 답이 없다. 남편 사업이 잘 되라 기도해 본다 ㅎㅎㅎ


출근을 하고 퇴근할 때는 50분 거리를 걸어보았다. 음. 퇴근은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따릉이를 타는게 나을거 같다. 차라리 밥을 먹고 근처 산책을 하는게 건강에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아이와는 하루 2번 정도 영상 통화를 한다. 엄마 보고 싶어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제 나름대로 잘 적응하고 있다. 첫날 엄마 보고 싶다고 울던 모습은 놀이 선생님이 계셔서 응아하고 싶은데 말을 못해서 그 슬픔에 울었던 것 같다.  그 이후 한번도 운적이 없고, 자란다 쌤이 오면 전화를 매몰차게 끊어버린다. 조금 섭섭했지만, 그 덕에 나의 해방타운에서의 삶도 아이 걱정없이 그럭저럭 유쾌하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티비 속 해방타운은 해방타운에 모인 사람들과 어울리며 보내지만, 나는 철저히 혼자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물론 사람들과의 만남도 조금씩 가져보려 하지만, 아직까지는 혼자 먹고 자고 즐기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집에 돌아가면 남편에게도 그 나름의 해방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주려고 한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엄마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게 남편은 아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 와중에 아픈 친정부모님도 찾아뵙고, 맛있는 수육도 만들어 드리고, 엄마 대신 요리도 하고  남편이 가진 자상함을 한껏 뽐내고 있다. 아무래도 난 남편 하나는 잘 만난 거 같다는.......... 쓸데없는 소리를 해본다 ㅎㅎ


갑상선 암으로 인해 나는 갑상선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갑상선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사람이 얼마나 피곤하고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번 동위 원소 치료를 끝으로 앞으로 다시는 재발, 전이 따위의 무시무시한 말들을 듣고 싶지 않지만, 재발이나 전이가 많다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두렵고도 무섭다.


하지만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꺼며, 내 아이를 지키고, 그 아이가 잘 성장해나갈 수 있게 인도할 것이다.

좋은 아내이자, 좋은 엄마이자, 그들의 좋은 친구가 되리라 다시금 생각한다. 마흔살에는 더욱 행복해 질 것이다!


우리 잘 살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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