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혹은 가까이

by Akajo

문득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새벽 두시에 침대에 누워서 듣는 들국화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감상이라던가, 비가 오면 창문 밖을 바라보게 되는 것들 말이다. 몇번의 재현을 시도했으나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나는 그만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제 그런 것들을 알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천천히 관찰하고 아껴주며 서서히 사랑하게 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힘든 일이다.


나는 나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일까.


정류장에 서성이는 커플을 보았다. 여자는 꽃을 들고 있었고 버스가 도착하자 서로 좋은 시간을 보냈는지 웃으며 헤어졌다. 창가에 앉아 밖을 보던 나는 혜화인근에서 흑인 남성이 거리를 거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내가 학부생 때 참여했던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아내로 보이는 여성과 함께 있었으며 그녀는귀여운 아기를 한 손에 꼭 안고 있었다.


한 원형 교차로에서는 정지선을 지키지 못해 횡단보도를 조금 침범한 승용차를 나무라는 노인을 봤다. 그는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성이 안 풀리는지 재차 운전석 쪽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카페 문을 열자 풍겨오던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 역시도.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발견한 새로운 점들이 나를 묘하게 웃음 짓게 한다.


그런 하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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