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 일산 집.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골목길 보며 담배를 피던 나는 다시 회한에 빠져있다. 문 밖을 나서며 다음 주에 있을 나의 생일에 부모와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뒤 돌았을 때, 나는 이곳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한손에 무거운 검은색 더플백을 들고 걸음을 힘차게 옮겨 현존하는 나의 서울로 돌아갔다.
나는 나에 대한 혐오와 고통스러운 기억의 고향에 오면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비로소 이제서야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했다.
그러나 돈암동에 위치한 작은 매트리스에서 아침을 맞이했을 때 한기로 인해 잔뜩 막혀버린 코와 가래를 입 밖으로 내뱉고 난 뒤. 8살 무렵, 홀로 낮잠에서 깨어난 뒤 가만히 앉아 유리창에 투과되어 느끼던 따스한 햇살이 떠오르자 부모의 부재를 두려워 하던 나의 모습이 선했다.
‘ 이제 내 방을 정리해서 엄마 아빠가 썼으면 해’
자식들에게 하나씩 주고, 남은 자리가 거실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내가 말했다.
그들은 언젠가 내가 그렇게 말할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더이상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그 두려움에 악착같이 나의 방을 내버려두었다. 내가 목을 메려했던, 벽에 주먹을 날려 구멍이 났던 그 방을. 그러나 내가 이곳으로 돌아오는 횟수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