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에게 물리다.

by Akajo

일이 끝나자마자 연극을 보러 가서는 칼국수를 먹는다. 성신여대의 반듯한 잔. 걸어서 집으로 향해 모기가 물리고 자고 일어나니 호랑이 꿈, 아침에 집을 떠나다.


전문_

엄마가 산책인지 뭔지 여하튼 둘이 걸어가는데 엄청 큰 호랑이가 지나가는 걸 보았어. 엄마는 두려워 호랑이가 우리 쪽으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맹수가 우리 쪽으로 달려오니 네가 무서워하지 않고 그놈이랑 싸우려 하는 거야. 근데 네가 호랑이를 응시하며 무서워하지 않고 싸우려는데 날 보호하려는 건지 호랑이에게 팔이 물렸는데 너의 용감함에 덜 무서웠어.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아. 여하튼 뭔가 좋은 꿈. 네가 잘 될 거 같아. 그 집에서 처음 잤는데 그런 꿈을 꾸다니.


너의 태몽도 사자인지 호랑이인지 꾸었는데. 여하튼 기운이 좋다. 건강조심하고 운전도. 항상 널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


엄마는 나와 6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 여동생을 낳고 잠이 든 병동에서 홀로 눈을 떴다. 온 가족이 함께 잠들어 있던 그곳에서 잠에 취해 있던 아빠와 누나 그리고 나를 보고 엄마는 생각했다.

‘ 이들을 어찌하지 ’


그날은 우연찮은 날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업무를 끝내고 집에 가려던 참이었다. 함께 연극을 보지 않겠냐는 엄마의 말에 내키지 않았지만 혜화로 갔다.

오랫만에 본 아빠는 그날따라 멋있었다. 엄마 역시도 내가 온 것에 기분이 좋은 기색이었다.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나는 함께 연극을 보았고 연극은 물론 재미가 없었다. 아빠는 혜화에 오면 항상 자신이 다녔던 고등학교가 근처에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나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이유 없이 기분이 참 좋았졌다. 한 번은 고교 시절의 아빠가 일제강점기 잔재 스타일의 교복을 입고 통학하던 모습이 머릿속에 상상돼 퍽 웃기기도 했다. 나는 혜화의 로터리로 진입하기 전 항상 그 상상을 했다.


나는 그들과 술 한잔을 하기로 약속하고 집 앞에 나의 오토바이를 주차했고. 함께 술을 마셨다. 친구들 혹은 선후배들과 함께하던 성신에 부모님과 있다는 것은 생경한 느낌이었다.


술을 즐기지 않는 엄마 아빠는 그날따라 기분이 좋은지 꽤 많은 양의 술을 먹었다. 나 역시도 그런 그들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아빠는 나와 누나가 자신이 퇴직하기 전에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누나가 나보다는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는 얘기를 했지만 아빠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 내년 안에 결혼을 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엄마와 아빠가 안전하고 따뜻하게 잘 수 있게 이불을 정성스레 펼쳤다. 그리고 우리 셋은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깬 나는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이부자리를 보았다. 이른 시간에 깨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엄마 아빠는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나는 6살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살던 23평의 2층 아파트의 내 방에서 낮잠을 자다 일어난 그날이 떠올랐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와 불 꺼진 집 안에 흐르던 적막, 채 깨어나지 못해 정신이 서서히 또렷해지면 엄습해 오던 혼자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런데 나는 오늘 잠에서 홀로 깨어났지만 두렵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개어놓은 이부자리를 잘 정리하고 다시 나의 삶을 위해 현관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그리고 엄마에게 카톡하나를 받는다.


00아 오늘 꿈에서 네가 호랑이에게 물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