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7
사박사박. 영하의 날씨에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담배연기를 화 하고 내뿜었다. 돈암동에서 처음 맞는 겨울이었다. 추위에 시큰거리는 코를 한번 메만지고 걸음을 내딛던 나는, 알 수 없는 회한에 빠져들었다.
겨울은 응당 내것을 가져갔다. 그것은 마치 역앞 가판대에서 초록 네잎클로버를 판매하는 어느 노인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곧 대학원실에 오지 않을 선배는 자기의 집기를 정리하며 말했다. " 혼자 잘 해나가야지 이제 " 나에 머리속에 맴돌던 그의 말은 곧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는 곧이어 자신이 가장 아끼던 영화 포스터를 들어올리고는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챙기지 않고 집으로 가버렸는데. 몸을 무겁게 하는 수고스러움을 덜어내려 했던 것일까. " 다시 돌아와서 챙겨갈게 "
그러나 오늘을 기점으로 그의 것을 하나씩 가지고 떠날 때마다 그는 생각할 것이다. 이곳에서 몸을 맞 부딪히던 순간들을. '그는 그 자신을 다시 어딘가로 가져다 놓겠지.'
곧이어 나는 홀로 남겨졌다.
두개의 필름을 맡기려 찾았던 홍대의 황폐한 사진관. 중년의 사진사가 카메라를 들고 좁은 문으로 나서려는 찰나였다. " 현상가가 얼마인가요?" 추위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나를 본 그는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 더 이상 현상은 하지 않습니다. 일부러 찾아와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그는 곧이어 나에게 토로하듯 말했다. " 홍대를 떠나려 해요" 나는 그의 이면적인 표정을 보고 아쉬운 인사를 남기고 돌아섰다. 그는 묵은 고민의 해소와 나의 방문에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 역시도 자신의 사진기를 어딘가로 다시 가져다 놓을 것이다.
겨울은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나를 찾아올 것이다. 나는 그의 방문을 예상하고는 조금은 갈피가 잡힌 두려움을 느끼며, 사박사박 거리고는 하얗게 쌓인 눈에 걸음을 내딛고 어디론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