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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 헤드린 Sep 03. 2024

어렸을 적 '진리'에 대한 고찰

철학도의 회상록-8

1. 들어가며

저는 어려서부터 유독 허공을 바라보며 공상에 빠지길 좋아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생각의 꼬리에 또 다른 생각이 이어져, 이상하리만큼 괴상한 생각에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어째서인지 당시에는 그 생각이 이상하다 하더라도 단지 사고하는 과정에서 큰 재미를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진리라도 발견한 것 같은 날이 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이 오면 저는 너무나 기뻐서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깨달은 진리를 설명하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물론 남에게는 별거 아니었지만, 저에게는 세상의 원리를 알아낸 듯한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사소하고 엉뚱할 수 있으나, 지금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추억을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2. '모름'


저에게는 1명의 남동생이 있습니다. 저와 1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죠. 그래서 과거에는 동생과 엄청 싸웠었습니다. 제가 키는 조금 더 크기는 했지만 생각의 차이는 크지 않았습니다. 저는 동생을 가르치려 했으나, 동생도 저에게는 지려고 하지 않았죠. 동생과 저는 성격과 생활패턴 등에서 많이 차이가 났습니다. 동생과 저는 엄마에게 혼날 때에도 그 자세가 많이 달랐는데, 제가 혼날 때에는 주로 바닥에 무늬를 구경하고는 했습니다. 깊게 집중하다 보면 바닥의 타일에 있는 무늬가 없어지고 온통 황톳빛 바닥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정신을 집중시키고 타일의 검은 줄은 없애가며, 다양한 무늬를 상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이 나도 크게 타격을 받지 않는 유형이었죠. 그렇다 보니 부모님께 혼남이 잦고 저 또한 스스로 자기 잘못을 잘 교정하지 않는 단점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 엄마는 저에게 혼을 내실 때 "집에서 나가"를 시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하였으나, 저는 곧 상황을 타계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극적으로 뉘우치는 듯 감정을 고조시키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었죠. 그렇게 하고 나와야 다시 돌아갈 때, 쉽게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파트를 나와서 인근 놀이터에서 곤충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너무 일찍 돌아가면 아직 엄마의 화가 풀리지 않고, 너무 늦게 들어가면 엄마가 걱정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래서 적당히 1시간 정도 모래사장에서 곤충을 구경하다가 들어가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있다가 들어가면 엄마는 저에게 냄새가 난다 얼른 샤워부터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 다시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한동안 이러한 저의 루틴에 큰 불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저의 잘못을 인지했으나, 일은 벌써 벌어졌기에 제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집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엄마는 제가 큰 뉘우침으로 한층 성숙해졌을 것이라는 기대를 충족시켜 드릴 수 있었고, 저 또한 불편한 집에 있기보다 TV 없이 자연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노는 것도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에게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주로 저와 동생 중에서 제가 잘못을 많이 하고, 동생은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만큼 동생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었습니다. 저는 불에 손가락을 데어 보고 불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라면, 동생은 불이 위험한지 어른들에게 질문하고 그 답을 그대로 따르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동생은 혼나는 경우가 적었죠.


그런데 어느 날 동생이 심각한 잘못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잘못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그 이후의 장면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엄마는 평소 저에게 혼을 내시듯이 말씀하셨고, 드디어 동생에게도 "집에 나가"를 어명 하셨습니다. 제 기억에 동생에게는 처음 시행된 처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긴장된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보았죠. 그때 동생은 눈물을 흘리며 "엄마가 나를 낳았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런 동생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엄마의 마음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예상과는 달리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엄마는 한순간에 표정이 바뀌며, "엄마가 미안해." 하면서 동생을 다독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동생의 임기응변에 놀람을 금치 못했죠. 그래서 이 순간을 기억하며, 다음에 또 엄마가 화났을 경우 '지금 동생처럼 행동해야겠다' 하고 다짐하였습니다.


저의 새로운 깨달음을 실습할 기회는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또 다른 잘못으로 엄마에게 혼이 나게 되었죠. 그리고 엄마는 "그럴 거면 나가"를 거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준비한 반응을 시행해 보았습니다. 저는 "엄마가 나를 낳았잖아."라고 흐느끼며 줄어드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엄마의 반응은 다시 저의 예상을 벗어났습니다. 엄마는 "얘가 왜 이러니. 어서 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씁쓸한 마음을 안고 집에서 나와 놀이터로 향했죠. 기어 다니는 곤충들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동생은 되고 나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고심하였습니다. 나이, 어조, 말투, 분위기 등 무엇이 저에게 문제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동생은 되고 나는 안되는지가 궁금했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어. 누가 하느냐가 문제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명제이나, 당시 저에게 있어서는 짧은 저의 삶을 관통하는 진리와 같았습니다. 왜 누구는 성실함에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누구는 야비했음에도 상을 받을 수 있는가? 같은 방법인데 왜 누구는 용납되고 누구는 용납될 수 없는가? 똑같이 배웠는데 왜 누구는 잘하고 누구는 못하는가? 이 모든 질문의 답은 어떤 요소에 문제의 탓을 돌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본래 문제는 그 사람인데 이를 간과하고 있었기에 삶이 부조리해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공상을 하고 있으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 집에 돌아가는 시간을 훌쩍 넘어버렸죠. 저를 찾으려 나온 엄마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마주쳤습니다. 당시 저는 태평하게 놀이터 의자에 누워있었습니다. 엄마는 아무런 말씀 없이 한숨을 쉬시며 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한 순간이라도 빨리 제가 발견한 진리를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분위기는 저는 저의 진리를 섣불리 자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들어가자 욕조에 물이 받아져 있었고, 엄마는 거품 입욕제를 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저와 같이 욕조로 들어갔습니다. 한순간 동생을 보며 얄미운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발견한 진리를 동생에게 자랑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동생에게 신이 나서 설명을 했습니다. 이제까지 저의 근 10년의 삶을 관통하는 진리를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저의 진리에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동생은 저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형. 집 나가게 되면 멀리 가지 말고 적당히 돌아와."


저는 진리를 설명한 저의 이야기를 동생이 주목하지 않아 다소 언짢았습니다. 그래서 더 동생이 얄밉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었습니다. 그러자 동생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 나가면 엄마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는단 말이야."


동생의 말을 듣는 순간 제가 발견한 진리의 뿌듯함과 동생을 향하던 얄미움이 모 사라졌습니다. 짧은 순간 제가 집을 나갔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엄마의 '나가' 다음에는 늘 따뜻한 거품 목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욕조의 물을 다시 만져 보았습니다.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물, 머릿속에 한 순간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엄마는 내가 나가자마자 돌아올 나를 기다렸어.' 동생은 무언가 이상해진 저의 표정을 보고 조용히 말없이 목욕을 하고 먼저 나갔습니다. 저는 욕조 팔걸이에 기대어 거품으로 글씨를 휘적였습니다. '누구냐가 문제다.' 그리고 부엌에 엄마의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어서 나와 밥 먹어야지."


저는 이렇게 문장을 수정했습니다. '모르겠다.' 엄마의 사랑 앞에 그 무엇도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았고, 진리나 반응 방법도 중요치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의 '진리'는 '모름'이 되었습니다. 저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동안 스스로 했던 공상과 사고들은 단순히 상상의 즐거움만을 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모두 제가 남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음'을 갈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진리라 생각되는 것을 발견할 때마나 스스로 지적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엄마의 사랑 앞에 저는 저의 '모름'을 발견했습니다. 기존에는 '앎'에서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었죠. 하지만 이 체험을 기점으로 저는 '모름'에서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신념이 새로이 생겨났습니다.


3. 소크라테스가 발견한 진리


'진리'하면 단연코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소크라테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에서 신탁을 받게 됩니다. 그 내용은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자는 없다'였습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고민에 빠집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버지는 석공이었고, 어머니는 산파였습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젊어서의 직업은 군인이었죠. 당시 사회를 고려하면 석공이라는 직업이 온갖 건축에 필요하기 때문에 사회적 위치도 나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당시 군인은 자신의 무구를 스스로 준비했다고 합니다. 이를 고려할 때 소크라테스의 집안이 경제적으로는 여유로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크라테스가 고등 교육을 받은 귀족의 자제는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산파였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죠. 그렇기에 소크라테스는 신탁의 내용이 탐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어느 날 신이 나에게 말하길 내가 가장 지혜롭다고 했던 건에 대하여, 스스로 입증하고자 시도합니다. 그는 지혜롭다고 이름난 이들을 찾아가 질문을 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가 과연 진리인지 말이지요.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모두들 자신이 지식이 많고 현명하다고 자처했으나, 실은 자기기만과 허세 속에 빠져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다시 델포이 신전으로 눈을 돌립니다. 델포이 신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원어: γνῶθι σεαυτόν)

본래 이 말의 출처는 다소 불명합니다. 고대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나 피타고라스의 말이라는 주장도 있고, 시인 페모노에의 말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말의 본래 의미는 '절제'를 미덕으로 제시하는 문구였다는 점입니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신들과 인간을 달리 구분했고, 인간이라면 신들과 달리 한정된 시간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이 문구를 분수에 맞는 자세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로마는 귀족사회였고, 출신과 신분에 따라 다른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위에 맞게 의식주를 달리 누리고 있었죠. 그렇기에 '너 자신을 알라'는 문장은 자신의 위치에 맞게 처신하라는 의미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이제 소크라테스를 만나 다르게 해석됩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찾아간 현명하다고 자처한 이들의 사례를 기반으로 '자기 자신의 무지를 인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진리'라고 깨닫습니다. 해당 문구는 다음 내용을 전제로 합니다. 첫째, 인간이라면 스스로 질문할 수 있음을 기반합니다. 무엇을 알기 위해서는 질문하고 답하는 사고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렇기에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고 답할 수 있는 존재'임을 전제로 합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뉘우치는 행위도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고 답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성찰과 같은 행위가 불가하다면 인간은 결코 자기 자신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체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며, 반성과 고백의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둘째, 인간은 '지'와 '무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합니다. 동양에서도 맹자는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사단을 설명합니다. 사단은 네 가지 씨앗을 말하는데 그중 '옳고 그름을 가르는 시비지심'이 있습니다. 이는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만약 인간이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알더라도 그 앎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셋째, 자기 자신을 아는 앎이 곧 진리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자기 양심의 심판에 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자시을 투명하게 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기만', '합리화', '허세', '허영', '회피' 등을 하기도 합니다.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앎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진리는 신적 세계에 있는 절대적인 앎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앎에서 시작합니다.


이를 고려해 보면 소크라테스가 가장 현명하다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은 맞는 말로 보입니다. 적어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소크라테스가 가장 현명하다'는 말을 증명하려 찾아다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만난 현명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와 같이 않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설명에 따르면 저의 체험은 자신의 무지, 생각의 한계를 마주한 체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어머님께 혼나는 상황을 관찰하고, 이를 분석함으로써 시련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의 법칙으로 '누구냐가 문제다'라는 명제를 찾았죠.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철저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입니다. 인간의 초월성은 고려되어 있지 않았죠. 바로 어머니의 사랑, 모성애와 같은 초월적 감정은 이성의 논리성과 합리성을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4. 나가며


어떻게 보면 어렸을 적 저는 사유하는 즐거움에 빠진 심미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혼자 사색하기를 즐겼고, 자신만의 진리를 찾으려로 노력했죠.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재미에 그친 경우가 많았습니다. 많은 경우는 금방 망각 속으로 사라졌죠. 그중 극 소수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중 하나는 오늘 소개한 '모름'입니다. 저는 지금도 철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상담도 하고 있죠. 그럴 때마다 스스로 자기에게 되물을 때가 많습니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자고 말입니다. 때로는 후배에게 배우기도 하고, 때로는 내담자에게 배우기도 합니다. 저는 진리를 모르고 있으며, 제가 알고 있는 진리는 제가 무지하다는 진리뿐이니까요. 하물며 세상 일은 부조리하기도 하고, 사람 속은 알 수가 없죠. 이런 삶에서 스스로 안다고 자부하는 자세가 어불성설일 것입니다.


저의 어렸을 진리를 추억하며,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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