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간 여행하는 내내 친구들과 있느라 혼자 있을 틈이 없었고 드디어 이별 후 몇 번의 새로운 데이트를 나갔다.
외국에 살다보니 외국인들과 데이트를 할 때가 많은데, 여긴 한없이 가벼우려면 가벼울 수 있는게 데이트이다.
하지만 진지한 연애를 목적 혹은 사람 자체가 진중한 사람들의 데이트는 또 엄청나게 다르다.
사실 전에 진지한 연애를 오래 쉬었고 전남친을 만날 때까지 몇 년간 공백이 있었는데, 그 땐 그저 말로는 연애하고 싶다고 하면서 그 땐 내가 연애를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 같다. 한없이 가벼웠던 듯 하다.
연애할 때 필요한 것들을 체크하는 나만의 기준이 없었고, 나도 상대도 진중함이 많이 없었는데 이젠 그런걸 보는 눈이 좀 생긴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진중하게 나에게 다가오는지 조금 다시 감이 생겼다고 해야하나..
이번 6월은 정말 많은 감정을 겪었다.
초반에는 여전히 슬프기도 하고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여행 전 2 개월동안 정말이지 혼이 빠져서 비행기표만 겨우 예약하고 계획도 없이 훌쩍 떠나는 거에 대한 설레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떠났었다.
시작이 그런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 내내 정말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걸 배웠다.
연간 3-5 번씩 해외여행을 하는 나에게도 다섯손가락에 꼽을만큼 좋았던 여행이다.
첫번째 여행지는 친구의 결혼식이었다.
결혼하는 신부 외에는 다 처음 보는 친구들이었는데 급속도로 친구가 되었다.
결혼식 - 피로연 - 나잇아웃 파티 - 브런치까지 연속으로 친구들과 다 함께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고, 이 와중에 나잇아웃 후에 햄버거집에서 얘기하게 된 귀여운 애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았고 다음 날 데이트를 나갔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 돌아오는 데 나보고 되게 너 되게 차가운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놀라서 무슨 얘기냐 했더니 감정을 되게 안 보이고 그냥 차갑게 느껴진다고 했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나는 전남친에게 emotional 하게 애기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무슨 불만이나 문제에 대해 얘기할 때, 나보고 emotional 하게 얘기하면 안 듣겠다 이성적으로 차분히 얘기하라는 애기를 여러번 들었고, 내 감정에 대해 의견을 얘기하는 걸 거부당했다. 화가 났다는 말, 힘들다는 말조차도 편하게 하지 못했던 때가 많다. 그 애는 지독한 회피형이고 이성적이고 싶어 그랬는지 몰라도 나까지 그렇게 강요당할 필요는 없었던 건데... 그냥 걔랑 사귈 땐 내가 그래 너무 감정적인가싶어 최대한 논리적으로만 얘기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내 감정을 맘껏 표현하는 법을 차차 까먹었나 보다.
감정을 너무 안 보이는 게 처음보는 사람이 얘기를 해준 건 좋은 피드백(?)이었다.
스스로의 문제점을 제 3 자의 시선에서 듣고 또 이걸 자각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다들 알 거다.
두번째 여행지는 애정이 넘치고 귀여운 친구 커플과 함께였다.
오랜 장기연애를 하고 결혼한 커플이고 서로를 배려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존중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분명 내가 연인과 함께였다면 나도 모르게 성질을 냈을 지도, 그 친구가 성질을 냈을지도 모르는 부분까지도 이 친구들은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해결해나가는 걸 보고, 많이 배운 것 같다.
좋은 부분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고 애정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내가 많이 부족한 부분이다. 뭔가 쑥스럽다.
앞으로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좋은 점은 계속 발견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칭찬해줘야지
그러고 나서 다른 도시로 이동을 했고 오래 전에 다른 친구를 통해 만나서 알게된 친구가 연락이 와서는 마침 본인도 그 도시에 올 일이 있다면서 와서 며칠간 투어를 해줬다.
이후에 이 친구 또한 헤어진지 얼마 안되서 속상해하는 나를 배려를 많이 해주고 존중하면서 데이트 신청을 했다. 정말 맛있는 것 먹고, 술 한잔하고, 밤에 드라이브하면서 도시 관광지를 구경하면서 많이 웃었다. 덕분에 또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기고 본인이 곧 내가 사는 나라로 여행을 올 지 모르겠다며 꼭 그럼 만나달라는 약속을 하고 이 여행지를 기분 좋게 마무리 했다.
좋은 사람이고 좋은 친구였고 좋은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내 마음이 아직은 데이트를 할 만큼 감정적 여유가 있지는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다른 나라로 또 이동했다.
여기서는 아주 많은 친구들 그룹과 함께였는데, 몇 년 간 알던 친구들이 관심을 표현하기도 하고 새로 만난 친구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도 하는 일이 여러번 있으면서 또 느꼈다.
내가 전남친과 헤어질 때 이별보다도 가장 슬펐던 건 앞으로 내가 나이가 들어서 더이상 좋은 사람을 못 만날까 걱정이 된다는 거였다. 하지만, 의외로 내 나이 30대 중반에 싱글이어도 주변에 좋은 사람은 많고 이제는 오히려 더 진중하고 성숙한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배려심있게 다가오는 걸 보면서 많이 마음의 왠지 모를 위안이 생겼다.
또 오래 알던 친한 친구들을 오랜만에 보고 퀄리티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이제 이별의 슬픔은 차치하고라도 전남친 얼굴은 생각도 잘 안나는 상황에 이르렀다.
역시 모든 일은 시간이 약이다.
이렇게 이별 후 3개월 남짓 된 지금.
본국에 돌아오자마자 간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밀려있던 데이트들도 나가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이별에 아파본 게 사실 첫사랑 이후론 처음이라 어찌 할 바를 모르고 힘들었던 것 같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살은 말도 못하게 빠지고, 정신 빠진 채로 지냈던 몇 달이었는데... 이렇게 3개월 지나니 전남친이 정확히 어땠는지는 생각도 잘 안 날 정도고, 그 힘들던 때에 대해 친구들이랑 농담하면서 엄청 웃기도 했다.
사실 내가 여행하는 동안 올리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전남친이 몇 번 뜬금없이 좋아요를 누르기도 했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밖에는 안 들었다. 정말 이제 극복이 된 거겠지
최근 이별로 힘든 분들은 다들 잘 이겨내시길 바라고 시간이 약이라는 거 꼭 믿고 슬픔을 마음껏 받아들여주시길..
또 이 기회를 자기 성장의 기회로 멋지게 쓰시길 바란다
(특히 이별 다이어트는 정말 최고의 다이어트이니 그 시간 마저도 즐기시길....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