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지는 저녁 하늘.

어린 시절 기억의 조각.

by pstomoyo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은

산 바로 아래에 있는 아파트단지였다.

걸어서 산 입구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산아래 끝에서 두 번째 동이었던 아파트는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 해질 무렵이면 놀이터에 바라보는 노을이 한눈에들어오곤 했다.

모래장난을 하거나 돌로 나뭇잎과 색색의 꽃을 찧어초록색의 나뭇잎에 가지런히 올려 소꿉놀이에 엄마 아빠 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해는 기울어져 하늘은 노랗게 빨갛게 때론 분홍빛으로 주황빛으로 물들어 보고 있는 나를 매료시키곤 했다. 시간이 이렇게 한참 지난 지금도 그 광경이 내 기억 속에 남아있으니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으리라 생각된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노을을 사랑하게 된 것이.

오묘한 그 빛깔의 향연을 보고 있자면,

와. 누가 만들었을까 저 하늘.

해는 왜 지는 걸까.

밤은 매일 어떻게 찾아오지..?

놀아도 놀아도 왜 아직 낮인거지?


어린 맘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철없는 사춘기 소녀도 아닌 어린아이가. 고작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인 그 아이는 넓디넓은 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구름을 보며

이곳이 어딜까,

내가 어떻게 여기에 와 있지,

나의 엄마 아빠는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일까,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떻게 정해지고 만들어진 것일까,

이 아름다운 노을이 만들어내는 이 신비로운 빛깔을비집고 나가면 그 뒤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또 다른 세상이 있기나 한 걸까?…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그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기억 저편 어느 언저리까지 한참을 끌고 가 그렇게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황홀한 노을빛 하늘,그 아래에서 말이다.


어느 오후, 창가로 해가 기울어질 무렵 나는 거울을 보며 엄마가 해주는 것처럼 혼자 머리를 묶어보기를수십 번 도전했다. 그러다 결국 나 혼자서 내 머리를묶을 수 있게 되었을 즈음에, 나는 생각했다.

‘ 나도 해냈어. 나도 할 줄 알잖아? 나도 이제 조금은 어른인 것 같아.! ‘

그리고는 지구 상에 떨어진 내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점차 줄이고 또 다른 고민으로 접어들었던 것 같다.

엄마가 퐁퐁으로 만들어준 비눗방울을 베란다에서 빨대로 후~ 불면서도 나는 흘러가는 구름을 관찰했고, 때로는 동물이나 어떤 형태로 만들어지는 사물의 모습을 구름 속에서 찾아내며 조용히 혼자 속으로 환호했다.


아파트는 언덕 끝자락이라 입구에 있는 상가의 문구점이라도 한번 가려면 먼 내리막길을 감행해야만 했다. 놀이터 앞에 연결된 길고 긴 계단으로 이어진 곳에는 또 다른 동네가 있었다. 그 계단을 내려가면 조금은 어두운 가로등 불에 의지해야지만 길을 찾을 수 있는 낯선 주택단지가 모여있었다. 그곳에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문구점이 그나마 집에서는 멀지 않았어서 저녁 무렵 갑자기 준비물이 필요할 때면 그 계단 아래 문구점에 가곤 했다.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어두워서였을까, 어린 마음에 무언가 무서운 동네라는 생각을 조금 했던 것 같다. 보이지 않는데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고 골목에 사람들은 거의 보이질 않았다. 낮에는 내려가 보질 않았던 것 같아서 더 그런 생각을 가졌나 보다. 그 계단을 중심으로 위와 아래는 나에게 마치 다른 세상 같다고 여겨졌다.

어두운 동네. 달빛이나 가로등 불에 희미하게 보이는 어두운 골목과 노을이 환-하게 펼쳐지는 계단 위의 놀이터.

부의 개념은 없던 나이였으니 그런 맥락으로 동네를구분 지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학교는 언덕길을 내려와 아파트 입구 반대편에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길고 긴 오르막 앞에 서면 무거운 책가방은 천근만근으로 내 어깨를 짓눌렀다. 마치 누군가 뒤에서 나를 잡아당기는 느낌에 상체를 한껏 수그린 채로 나는 오르막길을 올랐다. 겨울이 되어 언덕길에 눈이라도 쌓일 때면 엄마는 운동화 밑창에 미끄럼 방지 기능이 탑재된 신발을 사주시곤했다. 마치 이 신발 하나면 어떤 눈밭도 문제없을 것같은 믿음으로 나는 겨울 내 그 길을 오르내렸다.


얼마 전, 첨엔

‘뭐야 이 드라마. 이상하다.’로 시작해

‘아 이 드라마 진짜. 제대로다. ‘ 로 끝까지 챙겨본 드라마가 있었다.

여주인공이 까만 밤, 사랑하는 남자와 갈대밭을 지나 여름 끝자락의 찬 밤바람을 맞으며 산을 오르는 장면에서 하는 나레이션이 있었다.

어릴 적, 교회에서 기도제목을 써내는데 공부, 성적,친구관계 이런 류의 고민을 적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 되었다.

신한테? 신인데? 고작, 이런 걸 묻는다고?

내가 궁금했던 건 단 하나,

나, 누구에요? 여기 어디에요?…

소름 돋게 어린 나의 생각이 그녀의 어린 시절과 닮아 있어 그 장면에서 순간 나는 쎄게 놀랐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아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까? 요즘 아이들은 모든 게 빠르다고 하니 어쩌면 더 어린 나이에도 가능하겠다 싶기도 하다.

그렇게 답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자라서 어느새 세상과 타협하고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게 되지 않았나.

난 이제 바쁘고 생각할 것도 많으니 그 따위 고민들은 중요하지 않아. 하며 망상 따위 집어치우고 현실에 집중하자고 나를 다잡으며 살다가 그제서야 진짜어른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 싶다. 이제는 다 커서 그런 의문들은 다 풀렸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묻지 않았지만 나의 아이가 훗날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과연 현명하게 대답해 줄 수 있을런지 모를 일이다. 네가 궁금한 그것이 무엇인지 엄마는 다 알고 있는데 명쾌하게 답을 내려주고 싶기는 하다만, 아이가 알고 있는 그 세상 안에서 가장 성실하고 착한 답변을 해주고 싶다.

물론, 어떤 대답도 그 미지의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지금에 그 마음, 꼭 기억하고 살아가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