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을 하고 있었다.
브라운관 속 그녀와 엄마가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우연히 짧게 편집된 영상을 보다가 괜찮을 것 같아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보았다.
어린시절, 힘듦을 이야기 하고 싶은 그녀와 그걸 피하고 싶은 엄마가 감정을 대적하다가
결국은 눈물을 보이며 울고 마는 그녀.
자세하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 부유하지 못했던 형편과 가정의 불화로 적잖이 마음 고생을 했던 모양이다 라고 추측만 했다.
나는 묘하게 감정 이입을 하며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부부가 사이가 좋으면 아이들도 다들 착하고
모나지 않고 바르다. 또 아이들과 아빠와의 사이가 돈독하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사실 대부분 그러한 듯 보인다. 물론 예외는 있는 법.
우리집은 그닥 화목하지도 또 그닥 불행하지도 않은보통의 평범한 집안이었다.
하지만, 가끔 있는 엄마 아빠의 크고 작은 다툼들에 늘 눈치를 보며 숨죽여 있었다.
언제 목소리가 커질까, 언제쯤 싸움이 잠잠해질까.
어린 나는 아무것도 해결 할 수 없음에 답답해 하며 그냥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엄마는 불만이 많은 아빠의 이야기를 아빠가 없는 공간에서 우리에게 푸념하듯 늘어놓았다.
그냥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니, 엄마의 쏟아내듯 내뱉는 말들에서 엄마는 어느정도 해소를 하고 위안을 얻는 듯 보였다. 어른이 된 지금, 엄마의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프로그램에서 모연예인이 나와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집안에 소홀하고 신경 못 써주는 바쁜 아빠이지만, 아내는 한번도 나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나쁘게 전한 적이 없다.
“아빠는 늘 너희를 위해 열심히 살고 일하셔. 바빠서 같이 있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정말 너희를 사랑하신단다. “
그 덕분에 내가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게끔 더 노력하게 해주었고 아내와도 지금까지 너무 사랑하고 존중하며 잘 지내고 있다. 라는 이야기.
그 말을 듣고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만약 엄마가 아빠의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늘어놓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는 아빠와 더 돈독한 부녀지간이 되었을까? 그건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를 일이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구나. 그럴 수 있겠구나. 적어도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친구와 비오는 오전, 차안에서 대화를 나누며 브런치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고딩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인데 한번도 나에게 집안의 이야기를 잘 꺼내놓지 않는 친구였다.
나도 굳이 묻지 않았고 친구 또한 일부러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는데
그날,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나 엄마가 최근에 좀 멀리 이사를 갔는데. 그게 그렇게 내 감정상태를 바꾸어 놓을 지 몰랐어.
이사가서 서운하다는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전에
엄마를 만나면 하도 아빠 이야기, 집안 이야기를 나쁜 감정을 담아 자기한테 쏟아내는 것이 너무 듣기 불편하고 힘들었었다. 그런데 엄마의 그 이야기를 듣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나 스스로 감정적으로 훨씬덜 힘들고 삶의 질이 달라지는 걸 느껴.
나는 정말, 엄마의 감정쓰레기통 이었던 것 같아.
나는 갑자기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양 멍해졌다.
엄마가 내게 쏟아내던 그 말들이 나도 감정쓰레기통에 불과했던 거였나.?
나는 그 단어를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내게 적용한 적은 없었던 거였다.
좋게 포장해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딸이었던 거다.
한번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 나쁜 기분으로 드는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많이 했어?
엄마가 이모들이나 주변사람 누구에게도 꺼내기 싫은 이야기들을 너희 아니면 누구에게 하겠니? 너네니까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거야.
그도 그럴 것이 아무에게도 말 못할 속내를 그냥 같이 사는 자식들인 우리에게는 서슴치 않고 했겠구나싶기는 했는데 가끔은 내가 그런 말들을 듣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떨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일들의 과정을 다 끌어모으고 모아 맘속에 담고는 그 과정을 반복하거나 닮는다거나 하지 않으려고 매 순간 노력하는 중이다.
나쁘다는 것을 내 온몸으로 느끼고 체험하는데 한참이 걸렸는데
그리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았는데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으니까.
최선을 다해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른이 된 지금도 때때로 일어났던 크고 작은 다툼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순간 순간 사진처럼 혹은 영상으로 저장되어 있다.
그 시간이 지난 후, 엄마나 아빠에게 한번도 그 이야기를 먼저 꺼낸 적은 없었다.
언제고 꼭 한번은 나 다 기억하고 있는데. 엄빠는 기억 하고 있어? 라고 물어나 보려고.
당신들이 순간의 감정에 매우 충실하게 행동하는 동안 어린 나의 마음이 어땠는지 혹시 생각해 보았는지 말이다.
그렇게 눈치보고 숨죽여 지내는 시간동안 사랑한다고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를 나누었더라면 나는 지금 보다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 아직도 덜 자란 미성숙한 어른이구나. 싶은 마음도 공존한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정말 이렇게 간사하다.
티비속 어린 그녀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다.
네 탓이 아니라고. 그냥 기억 저편 한 언저리에 묻어두고 너무 아파하지 말라고.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이다. 완벽한 인간은 없고, 완전한 행복은 없을거라고 말이다. 그 어딘가에도 작게나마 구멍은 보이기마련이라고. 뭐든 멀리서 바라보면 희극. 가까이서 바라보면 비극 이란 말도 있잖아.
어떠한 안좋은 상황에서도 나는 나의 아이를 보호하고싶다. 훗날 상처 받고 자랄 또 한명의 어른이 생기지 않도록. 적어도 내게 엄마는 그때 왜 그랬어? 라고 물을 일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