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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현 Sep 14. 2023

여행의 이유


“엄마, 아빠! 이번엔 어디 가요?“


    어릴 적부터 방학이 찾아오면, 우리 가족은 해외여행을 다니곤 했다.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아주 소중한 기회였다. 나는 이 시기를 누구보다 기대했고, 그렇게 떠난 여행은 항상 내 기대 이상으로 나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주었다. 어쩌면 방학 때 방학숙제와 예습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친구들이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나는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간다니, 어린 시절의 나에게 여행이란 ‘외국에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는 의미보단 ‘비행기 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학원을 뺄 수 있다‘는 쪽이 가까웠다. 일단 학원을 빠질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좋았으니까. 아니면 친구들이 날 부러워하던 표정을 즐겼으려나? 아, 내가 외국에 다녀와서 사온 기념품들을 친구들한테 나눠주는 재미도 있었다.




    2010년 여름, 우리 가족은 첫 해외여행지로 중국 베이징을 골랐다. 당시 나는 중국어를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물론 완전 기초 수준이고 놀이식으로 배우고 있다고 해도) 중국행을 선택한 것이었다.


‘너의 무대는 앞으로 이곳이 될 거야.’


    시간이 흐르고 생각해 보니, 부모님은 나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전해주신 게 아닐까? 8살의 나에게는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메시지였겠지만 이제는 뭔가 이해가 된다. 심지어 나는 15살에 이곳에서 세 학기 동안 살기도 했으니 말이다!

2010년, 베이징

    

    여행의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단순히 여러 경험을 위해서 여행을 다닐 수도 있다. 여행을 통하여 완전한 ‘쉼’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여행을 통해 평상시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지 못하는 감사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그 당시의 사소한 추억 하나가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버팀목이 되어주곤 한다. 그러기에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자주 여행을 다니려고 하셨던 것 같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면 생각의 폭도 자연스레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초등학생 시절과 같은 어릴 적에 떠난 여행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래도 나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혹은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사소한 경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다.

    나 또한 성인이 된 후 틈만 나면 스카이스캐너를 통해 값싼 비행기표를 찾으며, 시간이 되면 즉시 떠나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 부모님을 통해 얻은 선한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다채로운 경험‘이라는 내 인생의 가치관을 만들어주신 부모님께 항상 감사할 따름이다.




    만 스무 살인 현재, 나는 총 21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여러 번에 걸친 여행들이 지금의 나를 구성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독일과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을 비교하며 안타까움을 느끼곤 하고, 힘든 일이 닥쳐올 때에는 ‘그래봤자 중국 유학시절보단 덜 힘들 거야.’라며 고난을 극복하곤 한다. 여행을 통해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나는 대학교에서 많은 유학생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내 언어적 능력(유학 경험이 있기에 중국인과 회화는 충분히 가능했다)을 살려 ‘한국 학생 - 유학생 간 교류 촉진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많은 유학생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겪고 있는 상황들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나와 팀장님은 해외 거주 경험이 있기에 더욱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고 덕분에 많은 해결방안이 제시되어 대학, 더 나아가 지역 내 양측 학생들이 더욱 활발히 교류하며 지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아직 나는 더 넓은 길을 개척하기 위해 나아가는 중이다. 내가 성장하는 과정 속에는 항상 ‘여행’이라는 친구가 함께하고 있었다.


나무에서 가지가 뻗어 나가며 서로 멀어지는 것처럼

가깝게 지내던 친구나 형제도

세월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게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멀어져도

영원히 같은 뿌리를 공유하면서

서로를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웹툰 <대학일기> 中


    흔히 나와 내 또래 친구들은 ‘평생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20년 정도밖에 살지 않은, 아직 회사보단 학교가 익숙한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비교적 많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평생친구’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각자 직장이 생기고,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주변 친구들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평생친구’라고 칭했던 친구들마저도 내 주변에 없는 날이 오지 않을까?

    위 글처럼 아무리 멀어진다고 해도 같은 뿌리를 공유하며 서로를 잊어버리지 않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여행이라는 친구와는 틈틈이 연락이라도 할 수 있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최소한 멀어지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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