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좀 순서가 바뀐 것 같다.
보통은 부모가 앞서 가고 자식이 따라오는 법인데, 우리 집은 그게 영 반대다. 아들 둘은 진작에 제 길을 찾아 질주하고 있고, 정작 엄마인 나는 이제야 두 번째 사춘기를 앓는 중이다. 누가 부모고 누가 자식인지, 가끔은 헷갈릴 지경이다.
학원 한 번 안 보냈다. 아이들은 엄마랑 놀다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작은아이가 중학교 입학할때 부터는 내가 창업해서 사업을 궤도에 올리느라 허덕였다.
그게 전부였다. 학원 차 태워주는 대신, 퇴근하면 같이 뒹굴었고, 주말엔 별 계획 없이 나들이를 다녔다. 숙제 검사 한 번 제대로 해준 기억이 없다. 받아쓰기 점수가 몇 점인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때 나는 그게 교육인지도 몰랐고, 사실 교육을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 아이들과 뒹굴고 노는게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기특하게도 녀석들은 특목고를 갔다.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까지 갔다.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알아서 책상에 앉아 알아서 해냈다. 학비 한 번 내본 적이 없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녀석들이 스스로 찾아서 진학했고, 스스로 준비해서, 스스로 따낸 결과였다. 효자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고맙다는 말도 부족하고, 대단하다는 말도 어딘가 빈약하다. 그냥—얄밉도록 잘 컸다.
큰애는 곧 일본에 간다. 제 발로 기회를 찾아 건너갔다. 낯선 나라, 낯선 언어, 낯선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작은애는 스물다섯에 박사 졸업을 앞두고 있다. 또래 친구들이 취업 걱정할 나이에 이미 해외 리서치펌에 취업을 당해 사회인의 길을 걷고 있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향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린다. 가끔 연락이 오면 근황을 전하고, 가끔은 안 와도 불안하지 않다. 잘 있다는 걸 안다. 그냥 안다. 오래 함께 살았고, 오래 지켜봤으니까. 저 녀석들은 괜찮다. 언제나 그랬듯이.
문제는 나다.
녀석들이 제 길을 찾아 떠난 자리에, 나는 덩그러니 남았다. 아니, 정확히는 덩그러니 남겨진 게 아니라—그제야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창업하고, 사업하고, 평가위원 하고, 멘토 하고, 박사 과정까지 밟으면서도 늘 무언가를 향해 달렸는데. 어느 날 문득, 멈춰서 뒤를 돌아보니—내가 없었다. 정확히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원하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오랫동안 물어본 적이 없었다.
사업을 하는 동안 나는 늘 '대표'였다. 직원들 앞에서는 흔들리면 안 됐고, 거래처 앞에서는 단단해야 했고, 투자자 앞에서는 확신에 차 있어야 했다. 아이들 앞에서는 엄마였다. 든든해야 했고, 버팀목이어야 했다. 그 모든 역할을 해내는 동안, '나'는 어딘가 뒷전이었다. 아니, 뒷전이 아니라—아예 없었다. 나는 역할들의 총합이었지, 나 자신이 아니었다.
오십이 넘어서야 그 질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지금 이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근데 이상하게도, 모른다는 사실이 이제는 두렵지 않다. 예전엔 모르면 불안했다. 답이 없으면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지금은 다르다. 모르는 채로 걸어가는 것도 괜찮다는 걸, 오십이 넘어서야 조금씩 알게 됐다.
툭하면 눈물이 난다. 예쁜 카페를 지나치다가, 노을이 유독 붉은 날 저녁에, 오래된 노래 가사 한 줄에. 이유도 없이 울컥한다. 예전엔 그런 사람 보면 좀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는 내가 그 사람이 됐다. 딱히 슬픈 것도 아니고, 딱히 힘든 것도 아닌데. 그냥 뭔가 차올랐다가 넘치는 것 같은 느낌. 살면서 미처 느끼지 못하고 지나쳐 온 것들이 이제야 몸 밖으로 나오는 걸까, 싶기도 하다.
예쁜 것만 보면 또 깨발랄해진다. 꽃집 앞에서 혼자 두근거리고, 처음 가는 동네 골목길에서 설렌다. 아무도 모르는 작은 카페를 발견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오십 대 여자가 이래도 되나, 싶다가도—왜 안 돼, 싶기도 하다. 설레는 데 나이가 어딨나. 두근거리는 데 나이가 어딨나. 오히려 이 나이에 이렇게 감각이 살아있다는 게,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아들들도 안 낸 학비를 꼬박꼬박 내며 대학원을 다닌다. 박사 과정이다. 주변에선 대단하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냥 솔직히 말하고 싶다. 반은 배우고 싶어서, 반은—내가 나를 아직 다 알지 못해서다. 공부라는 핑계로, 나를 더 찾고 싶은 거다. 강의실에서 교수님 말씀을 받아 적으면서, 스물다섯 동기들 사이에 앉아서, 오십대 아줌마가 열심히 필기를 한다. 철부지 맞다. 인정한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너무 좋다. 다시 학생이 된다는 게, 다시 뭔가를 모른다는 게, 다시 배운다는 게.
논어에 이런 말이 있다. 사십이면 불혹(不惑), 오십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다. 마흔에 흔들리지 않고, 쉰에는 하늘의 뜻을 안다는 말. 근데 나는 마흔에도 흔들렸고, 쉰이 넘어서도 아직 하늘의 뜻을 모르겠다. 공자님 말씀이 다 맞는 건 아닌 것 같다. 아니면 나만 유독 늦된 건지도. 어쩌면 그게 나다운 건지도. 남들보다 조금 늦게, 조금 더 돌아서, 결국엔 내 길을 찾는 사람.
있잖아.
오십 대 사춘기가 꼭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첫 번째 사춘기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로, 그냥 앞만 보고 달렸다. 뭔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으로, 뭔가 해내야 한다는 불안으로. 두 번째 사춘기는 다르다. 이번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조금은 알면서 방황한다. 그게 더 무서울 것 같지만—오히려 더 단단하다. 방황의 질이 다르다, 고나 할까. 흔들리는데 뿌리가 있는 방황. 길을 잃었는데 집을 아는 방황. 그런 방황이다.
아들들아.
너희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서, 엄마는 이제 좀 뒤를 돌아봐도 되는 거지? 너희가 그렇게 잘 가줘서, 엄마가 방황할 자리가 생겼잖아. 고맙다, 진짜로. 학비 한 번 안 내게 해줘서가 아니라—엄마가 엄마로만 살지 않아도 되게 해줘서. 너희가 단단해지는 동안, 엄마도 다시 물러지고, 다시 여물어지는 중이다.
나는 지금, 두 번째 인생을 창업 중이다.
첫 번째 창업은 사업이었고, 두 번째 창업은 나 자신이다. 정부 지원도 없고, 멘토도 없고, 로드맵도 없다. 사업계획서도 없고, 심사위원도 없다. 그냥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책 읽고, 글 쓰고, 달린다. 그게 전부인데—그게 지금 내 전부다. 어쩌면 이게 가장 순수한 창업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다. 오직 나만을 위한 창업.
늦게 피는 꽃도 꽃이니까.
징징이 엄마, 오늘도 꽤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