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 계속되는 이탈리아 남부 투어!

by 박종호
KakaoTalk_20250817_230821714.jpg 국뽕

이곳이 김민제의 도시입니까?

사실 원래 계획은 로마에서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나폴리에 도착해 김민제의 축구 경기를 직접 보는 것이었다. 당시 리그 선두를 질주하던 나폴리, 그리고 그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던 한국인 수비수 김민제를 현지에서 본다는 건 그 자체로 설레는 일이었다. 그러나 동행인과의 로마 투어 일정을 택하면서, 나는 경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축구팬으로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대신, 조금은 늦은 시간에 도착한 나폴리에서 나는 또 다른 감동을 마주하게 됐다.

해가 진 저녁 무렵,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시내를 향해 걸어가던 길이었다. 저 멀리서 푸른색 유니폼이 눈에 들어왔다. 나폴리의 상징적인 색이었다. 그리고 그 유니폼 등판엔 선명하게 적혀 있는 글자, ‘KIM’. 맞다. 김민제였다. 외국인이, 그것도 나폴리 현지인이 김민제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순간,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낯선 나라에서 한국인의 이름이 자랑스러운 유니폼에 새겨져 있다는 게 놀랍고도 뿌듯했다. 그 유니폼을 입은 또 다른 사람은 바로 한국인이었다. 말은 안 걸었지만, 괜히 반가웠다. ‘아 저 사람은 경기를 보고 왔겠지’ 하는 부러움도 스쳤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간단한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마침 숙소 바로 아래에 중국 음식점이 있었고, 익숙한 메뉴가 그리워 그곳을 찾았다. 자연스럽게 중국어로 주문을 했고, 직원은 나를 중국인으로 착각한 듯했다. 나는 그 오해를 굳이 풀지 않았다. ‘동포’로 여긴 듯, 서비스 만두와 짜차이(중국식 단무지)까지 챙겨주셨다. 피곤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데 더없이 따뜻한 한 끼였다. 그렇게 김민제의 위상을 몸소 느끼며, 나폴리에서의 첫날 밤이 저물었다.


본격적인 나폴리 투어 시작 전에 짧은 휴식

지중해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나는 나폴리에 대해서도 꽤 기대를 품고 있었다. 바다와 접한 도시, 현지 식재료로 만든 맛있는 음식, 따뜻한 햇살 아래 여유로운 거리 풍경까지. 그러나 현실의 나폴리는 이상과는 조금 달랐다. 아침 햇살 아래 마주한 도시는 생각보다 거칠고 혼란스러웠다. 거리는 지저분했고, 거리 곳곳에 노숙자들이 보였다.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조심스레 걸었다. 사실 ‘마피아의 도시’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디선가 느껴지는 날 것의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경한 느낌이 주는 낯섦도 여행의 일부였다. 무엇보다 나는 이곳에서 4일간 머무를 예정이었고, 이틀 넘게 바쁘게 움직였던 나에게는 하루 정도의 여유가 필요했다. 그래서 오전 일정은 과감히 포기하고, 오랜만에 숙소에서 푹 쉬었다. 햇살이 들어오는 방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됐다.

오후가 되어 조금 출출해진 나는, 미리 알아본 해물 파스타 맛집을 찾아 나섰다. 나폴리 시내는 규모가 크지 않아 도보로 다닐 수 있었고, 숙소와 광장도 가까운 편이었다. ‘지중해의 도시 나폴리에서 먹는 해산물 파스타는 어떨까’라는 기대감을 안고 식당 문을 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조금 아쉬웠다. 면은 생각보다 너무 딱딱했고, 소스는 지나치게 짰다. 아마도 내 입맛이 한국식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그 순간, ‘현지의 맛’이라는 건 낯설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먹는 이탈리아 음식들이 얼마나 ‘한국화’되었는지도. 해외에서 오래 살아봤지만, 역시 입맛은 한국인이다.

식사를 마친 뒤, 가볍게 산책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아 있었기에, 오후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당시 마침 한국에서는 KBL 컵대회가 열리고 있었고, 침대에 누워 중계 방송을 틀었다. 집중해서 보진 않았지만, 익숙한 해설과 경기 장면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됐다. 먼 나라에 있어도, 일상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저녁에는 나폴리의 유명한 상권, ‘스파카 나폴리(Spaccanapoli)’를 찾았다. 지하철로 네 정거장 정도 떨어진 거리였고, 도착하자마자 나는 확실히 ‘현지의 나폴리에 도착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활기차고, 북적였고, 상점마다 특유의 개성이 넘쳤다. 여행자들이 많았고, 불안했던 낮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안전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한결 놓였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이곳이 마라도나의 도시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수많은 기념품 가게들이 마라도나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 머그컵, 포스터를 팔고 있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로선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김민제 유니폼을 찾았지만, 아쉽게도 없었다. 있었다면 주저 없이 샀을 것이다.

IMG_0461.HEIC 스파카 나폴리 골목에서

본격적인 저녁은 나폴리 피자였다. 사실 그동안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서 피자를 먹어봤기에, 특별한 기대는 없었다. 한국인의 입맛에는 도우도 얇고, 토핑도 단순해서 조금 밋밋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피자의 본고장에서 피자를 먹는다’는 상징성 하나로 식당을 찾았다.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곳은 눈앞에서 직접 화덕에 피자를 구워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시킨 하몽 피자의 모습은 예상대로 단출했다. 도우 위에 토마토 소스, 모차렐라 치즈, 하몽이 전부였다. 그러나 한 입 베어무는 순간, 피자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었다. 도우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쫄깃했고, 바삭한 겉면은 화덕 특유의 불맛까지 더해졌다. 밀가루의 향이 이렇게 고소할 수 있다니. 토마토 소스는 강하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뒷맛을 잡아줬다. 매콤하거나 달지 않은, 담백하고 정직한 맛이었다. 거기에 하몽은 적당히 짰다. 완벽한 조합을 이뤘다.

도우가 입안에서 녹기도 전에, 나는 다음 피자를 주문했다. 이번엔 치즈 피자였다. 역시나 심플한 비주얼. 그러나 동그란 치즈가 가운데 올려져 있었고, 그 치즈가 입안에서 퍼지는 감촉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짜지 않았고, 부드러웠고, 쫀득했다. 도우와 치즈가 서로를 돋보이게 했다. 혼자서 두 판의 피자를 거의 다 먹고 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게 진짜 나폴리 피자구나.’

이 날, 나폴리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지친 하루였지만, 맛있는 음식이 다시 나를 여행자로 만들었다. 그날의 맛과 그 감정은 지금도 또렷하다. 나폴리에서는 피자를 먹지 않고 돌아오면 안 된다. 그건 진심이다.

KakaoTalk_20250817_230821714_01.jpg 평소 피자를 좋아하지 않지만, 엄청났다


나폴리의 해안을 따라

기대 이상의 저녁을 먹은 후 나는 산책 겸 나폴리 해안가를 걸으로 갔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식당에서 내가 원하는 델로보 성이 보이는 해안가까지는 약 3km였다. 걸어서 40분 정도? 하지만 도보로 훈련되어 있는 나에게는 그렇게 먼거리가 아니었다. 어차피 소화도 시켜야 하니 걷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혼자 노래를 들으며 시내도 구경하고 바다도 구경하며 델로보 성이 보이는 해안가까지 갔다. 해안가로 혼자 걸어가며 노래를 들으니 조금은 센치해졌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아니니 그냥 넘어갔다. 사실 델로보 성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바다를 봤구나’ 정도로 만족했다. 그쪽 동네는 내가 생각하는 해안가는 아니었다. 어둡기도 하고, 뭔가 부두에 가까운 느낌. 그럼에도 나를 만족시기엔 충분했다. 조금은 무서웠지만, 나폴리 해안을 걸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IMG_0471.HEIC 솔직히 나폴리 자체에서 특별한 것은 없었다. 중간에 쉬는 느낌으로 가서 일정을 크게 짜지 않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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