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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의 개척자 Jan 12. 2022

01. 그래 네가 스승이다

이제 진짜 독서교사가 되자

"다음 주까지 다 읽고 반드시 독서감상문 써 오세요. 노트에 빈칸 없게 하고, 뒷장까지 정확하게 다 쓰세요. 괜히 글자 크게 쓰지 말고, 의미 없이 문단 나누지 말고, 꼼수 쓰지 말고 정확하게 쓰세요. 숙제 안 해오는 사람은 이번 주 토요일에 남습니다."

독서교사를 하면서 반드시 점검하는 항목이 독서감상문이다. 학생들이 책을  읽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었다. 확인할 다른 방법을 고민해 보지도 않았지만, 수업의 결과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에 상문이 편하다. 특히 교장선생님에게 독서수업이 얼마나 열심히  되고 있는지 보여주기에  좋은  독서감상문이었다. 그래서  사채업자가 되었다. 일수 받으러 다니는 사람처럼 월요일이면 학생들에게 독서감상문을 받으러 다녔다. 신체포기각서를 받은  마냥 당당한  앞에 학생들은 주눅이 들곤 했다. 학생 앞에서 다시 한번 독촉을 한다.


"언제까지 써 올래, 책을 읽기는 했니?"


그렇게 받아낸 귀한 독서감상문이 이제는 골칫거리가 된다. 정작 학생들이 낸 독서감상문은 읽기가 매우 곤란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알파벳인지 한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문자를 비롯해서, 억지로 쓰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말하는 지루한 내용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구성도 맞지 않았고, 주어와 서술어가 맞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학생들이 낸 숙제는 줄거리로 가득 차고 맨 마지막 줄에 '참 좋았다' 감상한 줄이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안 읽어서 너희들에게 낸 숙제가 아니다. 제발 줄거리 좀 쓰지 마.'


그렇게 독서교사로 회의감이 들 때


"선생님 이 책으로 감상문을 써도 될까요?"



이제 겨우 5학년이 되는 은지가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은 야마나키 히사시의 '내가 나인 것'이었다. 일본 작가를 좋아하지 않아서 평소에 추천하지 않던 책이었는데, 그날은 학생들에게 기대감이 다 떨어진 때라 어떤 책이든 가져가서 읽기만 한다면 소원이 없을 때였다.


월요일이 되고 다시 의무감으로 학생들은 감상문을 제출하고, 나도 의무감으로 하나씩 읽기 시작할 때 은지의 감상문은 달랐다.


"히데카즈(내가 나인 것 주인공)처럼 가출하고 싶다. 가끔 내 방 창문 밖으로 뛰고 싶을 때가 있다. 뉴스에서 자살하는 학생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제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에게 전화부터 해야 할까? 걔네 엄마에게도 우리 엄마에게도,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나? 상담으로만 가능할까?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혼란스러웠지만 계속 읽기 시작했다


"엄마와 난 완전히 다르다. 다들 우리 엄마를 보며 좋은 사람이고 말들 하지만 그건 내 사정을 모르는 생각이다. 밤 9시 넘어 쇼핑 가야 하고, 싫은 여행을 주말마다 따라가고, 사람들이 매일 마다 우리 집에 오는 게 싫다. 어쩌다가 엄마에게 쇼핑이 싫다. 주말에 집에 있고 싶다. 우리 집에 손님이 그만 오면 안 되냐고 물으면 엄마는 이상한 아이라고 한다. 게다가 엄마랑 너무나 잘 맞는 내 동생까지 합세해 엄마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


한낱 5학년의 투정으로 보일 수 있는 글이었지만, 은지와 엄마는 그냥 봐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볼 때 완전히 반대에 있는 사람이 은지와 은지의 엄마였다. 문제는 은지의 동생은 엄마가 원하는 전형적인 엄마 스타일의 딸이었다. 그러니 은지는 가정에서 별종으로 취급을 받고 동생에게 무시받고 엄마에게 이상한 아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어려웠는데 '내가 나인 것'을 읽고 자기의 속 마음을 말한 것이다.


은지를 불렀다.


"은지야 감상문 잘 읽었다. 엄마랑 달라서 힘들었겠다. 사람은 모두가 다르단다. 은지가 엄마랑 다른 것처럼, 엄마도 은지랑 달라. 다른 것은 잘 못이 아니야. 다만 엄마가 그걸 모르시는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를 은지가 이어받아 2시간을 쉬지 않고 그동안 당한 서러움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홀로 그렇게 사자후를 발하던 은지는 억울함이 풀렸는지 앞으로 자주 오겠다는 말을 하고 나갔다.


은지가 가고 나서 독서교사로 느껴보지 못했던 보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독서지. 이게 독서감상문이지.'


은지를 생각하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두 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첫 번째 학생들이 원하는 책을 읽게 하자

두 번째 독서감상문은 수다다


과연 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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