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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의 개척자 Feb 15. 2022

04. 님아, 제발 그 책 좀 버려

독서교육 최대의 짜증!!

대한민국에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 인문학 열풍이 불면 독서교사의 몸값이 올라가서 좋지 않겠냐고? 아니다. 독서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 선생님들은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자신들의 교육 계획에 맞추어 진도를 나가고 싶다. 그런데 인문학 열풍이 불어 닥치고 오직 인문고전만이 유일한 해답 인양 적혀 있는 베스트셀러가 유행하니 낭패다. 


한마디로 망했다. 


이제 모든 학부모들인 우리 독서 과정에 인문고전은 얼마나 보는지, 커리큘럼 구성은 어떤지, 수업은 뭘로 하는지 관심이 몰려온다. 평소에는 독서시간 아깝다고 주장했던 분들 마저도 갑자기 몰아닥친 인문고전 열풍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이렇게까지 비극적인 이유는 내 교육방식은 인문고전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난 학생들이 책을 놓은 시점으로 간다. 학생들이 입학하면 가볍게 웃으며 물어본다


"너 책 언제 놓았니?"

"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책 안 봤어요!"


그러면 학생을 데리고 3학년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보고 싶은 책을 골라보라고 한다. 중학생이 초등학생 3학년 수준의 책을 보고 있으면 다들 조바심을 낸다. 책 좀 보는 학교라고 들었는데 자신들의 기대와는 반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물어보고 싶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책에서 손을 놓았는데, 지금 두껍고 복잡한 장편소설과 사회 과학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차라리 돌잡이가 한글을 떼는 게 빠르다.


그런데 어느 날 예상했던 일이 당연히 일어났다

싱그러운 3월, 고등학교 1학년 신입반 수업에 들어갔다. 한 명 한 명 질문하며 책을 골라주는데 드디어 반항생이 등장했다. 


"넌 최근에 본 책이 있니?"

"아뇨"


"언제까지 책 봤니? 직접 책을 사서 본 적이 있어?"

"초등학교 4학년요"


"그래, 그럼 이 책 안 봤지, 한 번 봐 볼래"


추천해 준 책은 미하엘 엔더의 '모모'였다. 나름 그래도 수준을 매우 높게 평가해서 추천했다. 고등학생이 자존심이 상할 수 있으니 첫 만남을 좋게 하자는 의미였다.


그런데 반격이 들어왔다

"선생님, 전 인문고전만 읽으려고 이 학교 들어왔습니다. 지금 [존 스튜어트 밀튼의 자유론]을 읽으려고 합니다."


"얼마나 읽었니?"

"아직 시작은 안 했습니다"

"선생님은 네가 저 모모부터 읽었으면 좋겠는데?"

"아뇨, 전 제 책을 읽을게요"

"우리는 일주일에 한 권 읽는데, 다음 주까지 읽을 수 있을까?"

"네"


그게 끝이었다. 


그 다음 주에도, 그리고 그 다음 주에도, 그 다음에도 학생은 책을 읽지 못했다.

절대 억지로 학생에게 책을 권고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한 학기가 다 지날 무렵 식당에 두고 간 자유론을 발견하고 펴 보았다. 딱 7장 넘어가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수준에서 시작해서 한 학기 동안 중학생 과정까지 갈 동안 그 학생은 여전히 초등학생 수준에서 멈춰 있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자기는 인문고전만이 읽겠다고 우겼다. 부모님과 상담시간에도 설득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모님은 더 했다. 아들에 평가가 너무 커서 분명히 자기 아들은 뛰어난 실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교육방식을 하지 않아도 잘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쯤되니 화가 난다

'이 인문고전 베스트셀러 작가 만나기만 해 봐라'


2학기가 되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 학생이 가져온 책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였다

좌절이다. 아쉽게도 그 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6권의 책 표지만 보다가 갔다.


그래도 나름 두꺼운 책을 매일 들고 다니느라 운동은 제대로 했을 것 같다. 


책은 가장 개인적이다. 시각도, 가치관도, 눈높이도, 이해도도 모든 게 다른 홍채와 같다. 그런데 독자는 없이 무조건 인문고전만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은 히틀러의 파시즘과 뭐가 다를까? 자리에 앉아서 겨우 3-4페이지도 넘기지 못할 집중력과 이해도를 가진 사람이 대부분인데 너무나 목표는 크다. 100m 달리기 선수가 그냥 뛰기만 하면 되는 줄 아나보다. 근육을 만들고, 연습을 하고, 자세를 만들고, 식이요법을 하고, 호흡을 하고, 수백 번, 수천백 연습을 해야 선수가 된다. 책도 그렇게 독서가를 만든다. 


학생들을 제발 인문고전으로 고문하지 마라

어린아이에게 그 무거운 책 짊어져 키 못 크게 하지 마라

책 펴고 한페이도 못 넘기는 실망감만 주지 마라

인문고전으로 학생들에게 '난 안돼'라는 마음 주지 마라


제발 님아 그 책 좀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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