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제발 책 좀 읽게 그냥 두세요

독서는 공부가 아니다

학생이 도서관에 들어와 두리번두리번 한다

그러더니 조용히 묻는다

"선생님 오래된 책도 희망도서 신청할 수 있나요?

"응 신청할 수 있어, 무슨 책이 보고 싶어서 그러니?"

"저 해리포터를 처음부터 보고 싶어서요"

마침 우리 도서관에는 해리포터가 없었다. 많은 도서관에 필수적으로 비치하고 많은 대출양을 기록하는 책인데 어쩌다 보니 우리 도서관에는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학생들이 책을 집에 가지고 있어서 굳이 도서관에 비치할 필요가 없었다

"응, 신청할 수 있어"

그런데 문뜩 궁금증이 생겼다. 이 학생 가정이 넉넉한 걸로 유명한데 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하는 것이 이상했다. 책 산다고 하면 무조건 다 사주는 부모님이었다. 그래서 한 번도 희망도서를 신청하지 않은 학생이었다. 게다가 이 친구는 평소에도 해리포터 소품을 들고 다니던 학생이었다. 영화로 봤던 내용을 소설로 읽어 보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너 부모님에게 말하면 다 사주시지 않니?"

저 그게요, 엄마가 모든 시리즈를 이번에 사 주셨는데요
 원서로 사 주셨어요

아. 진짜 싫어!! 

독서는 독서고 공부는 공부다. 물론 원서를 읽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가 읽을 것도 아닌데, 왜 다른 사람에게 원서로 고문하는가? 부모님들은 참 나쁘다. 욕심은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중고등학생 자녀가 책만 들고 있어도 행복해야 하는데, 거기에 또 욕심을 부린다. 

원서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등장해서 인기를 끌 때가 있다. 원어가 어쩌고, 저쩌고, 라틴어가 어쩌고, 헬라어가 어쩌고, 영어가 어쩌고...... 아 진짜 짜증 난다. 

제발 한 번에 하나만 하자. 

독서도 그렇고, 원서도 그렇고 필요하면 필요한 사람이 직접 본다

원서를 강조하는 엄마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어머니, 앞으로 어머니께서는 영화든 텔레비전 드라마, 넷플릭스 디즈니 자막 없이 원어로만 보십시오. 어머니 영어 실력이 쭉쭉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독서는 공부가 아니다. 

다음에 글을 쓸 기회가 있겠지만, 독서를 하면 성적이 올라간다. 하지만 성적으로 올리기 위해서 독서를 하는 순간 독서도 성적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독서는 엔터테인먼트다. 독서에 빠진 학생은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유튜브보다 더 책에 빠져든다. 그 학생에게 그만한 엔터테인먼트가 없다. 즐기기 위해서 책을 읽는데 거기에 공부를 넣어 버리면 독서는 사라지게 된다.

게다가 원서로 책을 읽는다는 게 쉬운 게 아니다. 오히려 전공서적 원서는 쉽다. 몇 가지 단어와 용어를 알면 그 책 전체를 읽어내는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청소년들이 읽을만한 소설책은 다르다. 영어 생활권자가 쓰는 생활영어 단어는 우리가 학습하면서 배우는 영어단어와는 차원이 다르다. 어려운 단어가 아니지만 영어권자들이 쓰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이 많다. 이런 환경을 간단하게 경험할 수 있다. 마트에 가서 모든 일상용품을 영어로 말해보라. 부엌의 도구 하나하나, 양념 하나하나, 차고에 있는 용품 하나하나가 다 책에 나온다. 자녀에게 원서로 읽히고 싶으면 먼저 엄마가 읽으면 된다.

분노함을 감추고 학생에게 말한다

"다음 주에 와라. 전집 구해 놓으마, 그런데 집에 들키지 않게 하자"

"네!!!"

영어를 번역해야 되는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해리포터의 세계에 빠진 학생은 그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즐거울까? '아브라카다브라', '윙기오 레비오사'를 외치며 호그와트 학생이 되길 바란다

그런데 며칠 후 한 녀석이 도서관에 들어온다

"선생님 해리포터......?"

"너도냐?"

"아뇨. 전 반지의 제왕 전집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