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기 레슨이 윤광택 씨에게로
25m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도달하는 게 나의 단기목표였다. 그 목표를 달성하는데 4개월씩이나 걸릴 줄은 몰랐다.
같이 배운 동기들이 3개월이 지나니 모두 25m는 가뿐히 쉬지 않고 도착했다. 자유형 팔꺾기, 평형. 두 영법에 대한 발차기 등을 배우며 진도를 나갔다. 그 진도에 맞춰 뒤에서 엉덩덩 따라다니는 게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본체력이 부실해서 한 번만 갔다 와도 숨을 헉헉대며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리고 손. 발. 몸 모두 제각각 완전분리체라는 사실을 안 순간, 그것을 인정하는 게 속상했다. 공부 꼴등하는 학생이 가방 들고 매일학교 가서 멍하니 선생님 쳐다보는 그 멘털이 보통 멘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성실히 학교 가는 것만으로도 우리 집 아이들이 고맙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 못해도 학교는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매일 수영장에 갔고 주말엔 혼자 잘 안 되는 부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주말이면 아침 8시에 늘 검은 아쿠아 모자를 쓰시는 이모님이 내게 와서 "아직도 그러고 있냐"며 인사했다. "이모님 우리 반에서 뒤에서 1등 하는데 1등 유지하기도 쉽지 않아요. 유지 못하면 포기예요"했더니 포기하면 안 되니 본인이 가르쳐주신단다. "내가 30년 수영했는데 나이 들어서 예전만 못해도 보는 건 잘한다"하시며 내 옆에 오신다. 호흡하는 속도 팔꺽는 각도 발차는 박자등을 따라다니면서 가르치신다. 가르친다고 될 것 같았으면 벌써 됐겠지만 그분의 열성에 거절할 수 없어서 예예하며 시키는 대로 했다. 근데 그분이 보여주시는 자세와 모양새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만들었다.
" 내가 70 되어서 이리되었지 정말 잘했다." 하시며 옛날 수영 무용담과 살아온 이야기들을 하시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주말마다 내가 가는 시간대에 이모님이 계셨고 내가 연습하려면 늘 옆에 오시곤 했다. "발차기 더 세게, 얼굴 더 밀어 넣고, 가슴 밀고 밀어 더" 하시며 국가대표 코치가 훈련하듯이 본인은 키판을 잡고 발차기하시며 나를 연습시키셨다. 나는 수영선수처럼 그 말을 들으며 시키는 대로 했다. 우리는 초급레인에서 연습했고, 옆 수심 150m 레인에 있는 친구들이 국가대표 나가겠다며 놀리며 웃었다. "잘한다. 잘한다. 이제 한 번에 25m 하겠다. 자세도 좋아졌다." 아닌 것 같은데 자꾸 이모님이 잘한다 하시니 진짜 잘해졌나? 싶기도 했다. 이제 하산해도 되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특급 레슨을 받는데 같은 반에서 수영하는 윤광택 씨가 인사하며 들어온다. 그는 덩치도 크고 힘도 세다. 성격도 급해서 그가 수영하면 팔도 엄청 많이 돌리고 발차기도 세게 많이 해서 주변 사람들이 심하게 물을 먹는다. 그래서 주변인들은 그를 무서워한다. 그가 물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물이 출렁출렁거린다. 이를 어쩌나?
이모님이 해봐라 하니 윤광택 씨는 이제까지 배운 것들을 하나씩 해나갔다. 자유형. 배형. 펑형을 순차적으로 했고, 혼자 어깨너머로 배운 접형 할 때, 그의 넘치는 파워로 우리 모두를 출렁거리게 만들었다. 우스워서 모두 웃었다. 이모님이 "아저씨, 아고 아저씨 힘 좀 빼소. 뭔 힘이 그리 센가요? 떠밀려가겠다." 했더니 " 그래도 힘 빠진 거예요. 아줌마들한테 혼나서 지금 조심하고 있어요. 아줌마들 무서워요." 했다. "아주마보다 광택씨 물살이 더 무섭다" 하시며 힘 빼는 방법을 가르친다.
둘의 케미가 재미있다.
내게 하산의 순간이 왔음을 느꼈다. 그리고 조용히
그들의 수업공간에서 빠져나왔다.
이모님은 문지기였다는 사실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고마운 문지기였다. 사람들이 포기할 즈음 그녀에게 특급레슨을 받고 나면 신기하게도 25m를 가게 된다는 전설이 비밀리에 있었다. 다만, 본인들만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문지기 레슨이 끝나고 나니 신기하게도 25m를 갈 수 있고 자세도 좋아진 건 사실이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레슨의 효과였겠지?
광택씨도 지금 특급 수업 중이다. 하산할 때쯤이면 물살이 조용해질 것이다. 아마 우리는 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조용한 물살로 함께수업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불편해하기도 하고 배우고도 살아가는 것 같다. 이모님의 성가신 배러와 간섭 덕분에 나는 수영을 더 잘할 수 있게 되었다.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이모님도 그 시간이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을 것이다. 광택 씨와 이모님 두 분도 또 둘만의 고마움이 있을 것이다. 그럼 광택 씨와 나는 어떨까? 광택 씨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그 덕에 웬만한 물살을 견딜 수 있는 저항력이 생겼다. 내 덕분에 그는 새로운 스승님을 소개받아서 힘 빼고 수영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아마다 물살을 덜 출렁거리며 함께 수영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좋은 듯 나쁜 듯 그리고 나쁜 듯 좋은 듯 서로 얽히고설켜서 함께 성장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