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내게는 지독한 3년지기 친구가 있다. 우울증이다. 다시는 오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한 번 그 친구가 다녀오면 변한 내 모습에 만족하곤 한다. 근데 아이러니 한 것은 그 모습에 만족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내가 그 친구에 의해 살아남는 것이다. 이쯤되니 이제는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걱정은 없다. 하지만 죽는 순간의 아픔에 대한 두려움만 남을 뿐이다. 사후세계도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는 걸 죽는 것보다 추천한다. 왜 일까. 그 사람들도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살라고 말한다. 나는 죽는 순간과 죽고 나서 내가 혼과 넋과 영으로 나뉠때까지 내가 아픔을 가지고 지내게 될까봐 죽지 못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후 딱히 살고 싶지가 않았다. 희망도 없었고, 부모님과의 대화도 포기했다. 세상에 나 혼자였다. 원래부터 혼자있는 걸 좋아했지만 암흑 속에 혼자있는 느낌은 더 이상 어디로 나를 끌고 내려갈지 알 수 없는 공포를 심어주었다. 우울증이란 내게 무서운 친구다.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크로이티스'
'크로이티스' 불어의 아픔과 성장이라는 단어의 앞을 따보았다.
가족들은 그런다. 네가 도대체 뭐가 힘드냐고, 따지면 자신들이 더 힘든 거 아니냐고....그런가....'크로이티스, 니 생각은 어떠니...나는 도저히 아픔의 정도를 따질수가 없어.' 크로이티스는 말 없이 나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하기 때문에 답답하다. 크로이티스가 내 앞에 나타날때면 나는 약과 좋은 말로 그 아이가 내 안에 공존할 수 있게 도와준다. 크로이티스는 내가 자길 없애려고 하는 걸 알고 있겠지....'하지만 크로이티스, 너랑 같이 사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야. 이제서야 너 자체를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었어.'
크로이티스랑 함께 있으면 내가 너무 아프다....얘는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 주지도 못한다. 나중에는 형체도 상상해서 만들어줄 생각이다. 사람들은 그런다. 누구나 그런 친구는 하나씩 가볍게 가지고 있다고...크로이티스는 자아가 강한 것 같다. 가끔 걔한테 욕을 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한다. 절대 너한테 지지 않겠다고 다짐도 한다. "그때 너는 비웃고 있니, 아니면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니...나는 알고 싶어. 네 본심이 무엇인지...차라리 나타나서 알려줬으면 좋겠다. 너도 스스로를 모르나봐...항상 묵묵부답이니까. 근데, 그거 알아? 나는 이제 너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어. 너를 친구로 인식하고 용서하기로 한 순간...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공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물론 너가 방해가 되긴 해...되게 중요한 순간에 눈치 없이 들어오드라...밀어내면 오고, 계속 다시 오는 걸 보니, 너무 외로운가 봐..." 하긴 나도 내 자신을 모르는데 내 안에 갇혀사는 얘는 알 수나 있을까....그런데 얘는 지금 자신의 상태가 좋은 걸까....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추상적인 아이에게 형체와 감정을 넣으려니 힘이 부치다. 아, 얘는 단 걸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걸 멈추고 하고 싶은 걸 하길 바란다.
내가 행복하면 자신의 자리가 없을까봐...노심초사 하는 걸까....크로아티스 자체를 행복한 친구로 만들어 줄수는 없을까....확실한 건 얘가 오면 내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지는 것이다. 아직도 나는 얘를 탐구하는 중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10년지기가 될 수도 20년지기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은 부탁을 해서 크로아티스를 다른 곳에 가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직까지는 내 말을 잘 들어주는 것 같다. 얼마나 갈까...다시 나오는 날, 속마음을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