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위한 게 과연 맞는가

나중에는 수긍하게 될 걸 알지만

by 칼미아

칠판에 크게 수업시간 포함 쉬는 시간에 잡담은 복도에 가서 하라고 적어놓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그들이 더 시끄럽다. 헤드폰을 뚫고 들어오는 듣기 싫은 소리들. 나는 그들이 어떤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지 모의고사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 어떤 심정인지 알고 싶지 않다. 마음 같아서는 한 마디 하고 싶다. 방귀 뀐 놈들이 성낸다고 자신들이 한 말을 먼저 자신들이 지켜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마냥 흐뭇하게 바라보는 선생님들이 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모의고사는 왜 우리를 평가하는가. 뉴스 밑의 댓글들은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교육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지만, 말만 그렇고 안 바뀐다는 걸 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고3이고, 변화는 최소 10년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으니까.


세상이 미쳐가는 것 같고, 나도 미쳐가고 있다. 수험생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데 나는 광기형에 해당했다. 자조적인 냉소가 자꾸 쏟아져 나오고, 끊었다고 생각한 자해는 심해졌다. PMS를 지나고 난 후, 공부 흐름은 완전히 끊겨버렸다. 시끄러움에 예민하다고 별 꼴값을 다 떠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삭히며 20일만 참으라고 주변에서 들으며 속으로 생각하면서 지옥 같은 하루가 지나간다. 나는 예전부터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제는 그게 병인 것 같다. 이 병은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내 앞길을 방해할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고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하나 분석해낸 것은 자존감이 낮아지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고 우울증 그 자식이 찾아올 때 심해진다는 사실이다. 결국 나는 어릴 적 엄마가 한 말을 떠올려버렸다. '우리 둘째 딸 같은 성격의 애들이 커서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게 심하던데...' 맞아요. 엄마, 나는 다른 사람이 하지도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 같고 한 마디만 들어도 기분이 땅끝을 파고 들어가요.


차라리 그렇게 시달릴 바에는 내가 그냥 그런 시선에 걸맞은 사람이 되는 게 났다는 판단을 했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약간 미친 채로, 누가 이상하게 보더라도 조커와 천사가 합쳐진 게 무엇인지 보여주기로 했다. 어차피 세상 사람들은 조금씩은 다 미쳐있으니까. 우울이란 것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이 극복이 되면 달콤한 사탕처럼 한동안 내 정신을 홀리지만 나중에는 다시 찾아와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고민하게 만드는 비열한 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이유는 그 달콤한 사탕에 사람들이 조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극복하고 난 후의 쾌락을 알아버렸으니까, 힘든 일 다음에는 사탕이 있다는 걸 아니까. 이것의 연속이 삶이라는 것을 순응하고 살아가니까. 왜 공부하느라 바쁜데 창체 시간에 자살예방 교육을 계속 틀어주는가. 차라리 그 시간에 방송을 꺼놓고 공부 분위기에 이바지하라지. 본질을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말만 하는 위선자들 같으니라고.


누군가 죽어나가면 그때서야 한 번 힐끔 바라만 보면서 아픔은 모두 다 그런 거니까 나만 그런 거 아니니까 숨기고 포장하라고 무언으로 압박하는 사회가 모순적이고 싫다. 나는 그만 조커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해버리고 말았다. 그의 자조적인 웃음 뒤에 숨겨진 슬픔과 광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수능인가. 가정 내 분위기를 파탄내고, 가족 구성원이랑 싸우게 만들고 정신적으로 다 망가뜨려놓는 교육이, 사회에는 이미 편애받는 자들이 정해져 있다는 걸 보여주는 교육이, 학교가 더 이상 울타리가 아니라 전쟁터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교육이 내 인생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니면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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