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진 나사 하나
나사가 빠지면 고장 나는 것들처럼 내 인격 또한 그렇다. 내게 아픈 기억들은 모두 일어나는 일들에 의한 게 아니라 그에 반응하는 나의 천성이었다. 말로 공격을 받으면 그 당시 아무 말도 못 하고 머리가 새하얘지다가 나중에 되어서야 후회하며 힘들어하고 그게 쌓여 한 번에 폭발하면 제어가 안 된다. 유전 탓을 하는 이들은 못난 이들이겠지. 나의 과거와 같이. 쌓아둔 화가 더 무서운 이유는 그 화에는 사연이 많기 때문이다. 흐릿해져서 본질을 찾을 수 없는 수없는 사건들이 중첩되어 안에서 밖으로 폭발한다. 자격지심이 덮쳐오고 나는 그 당시 내가 처한 갈등을 피하게 된다. 상담 선생님은 이런 내 약점을 다시 밖으로 꺼내셨다. 처음엔 왜 그러시는지 몰랐고 기분도 나빴다. 불편함을 감수하기 싫어하는 나 자신이 싫고 자극에 예민한 내가 세상을 잘 살아갈지 의문이었지만 이제서라도 고칠 필요성을 알게 되고, 이 얘기가 중요하고 감사한 일이란 걸 선생님이 떠난 후에 알았다. 내 치부가 건드려졌으니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티가 났다. 전과 같이 선생님을 대할 수가 없었다. 일종의 당황스러움과 나 자신에 대한 분노랄까.
갑자기 저녁을 먹고 있는데 엄마가 우리에게 사과를 하셨다. 특히 내게. E성향이 강한 엄마 밑에서 자란 I들은 감정 표현이 서툴다는 걸 알게 되셨다면서. 감정 억압형 엄마 밑에서 자란 극 소심형 인간인 나는 항상 이 모든 게 내 탓이라고 치부했다. 물론 엄마의 비중은 10%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부모는 중요한 존재이기에 그 10%가 100이었던 적도 있었다. 내 감정을 삼키다 보니 사라져 버리는 걸 경험했었고, 이대로 가다간 안 되는 걸 알고도 난 방치해 버렸다. 내 감정을 마주하면 또 나 자신이 한심해질까 봐. 하지만 먼저 사과를 해준 엄마에게 감사했다. 내년에 성인이 되지만 꼭 사과받고 싶은 걸 받았다. 오늘 또 한 번 느꼈다. 이대로 살다 간 안 되겠다고. 고치고 싶다. 더 이상 할 말을 참고 쌓아두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 말 한 번으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아직도 조심스럽다. 그 적당히란 말은 내게 너무 모호한 개념이다. 그렇게 모두가 적당히, 적절히 잘 살았으면 고민도, 갈등도 없는 세상이 왔겠지. 아쉽게도 인생은 단 한 번이고 예행연습을 할 수 없는 게 흠이다. 그리고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 자체는 잘못이 아니나, 그럴수록 스스로의 세계에만 갇히게 된다. 애초에 답이 정해진 건 없는 세상이니까 변하기로 마음먹었다. 적당히, 적절히 는 맞출 수 없겠으나, 수정하는 것은 자신이 있다. 수정 테이프는 자국을 남기지만 종이에 새로운 길 또한 남겨 놓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