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강연

상상 강연

by 칼미아

불현듯 내가 고등학생 때 우울증을 겪었던 때가 다시금 떠올랐다. 나는 자주 브런치에 내 우울증 시기에 대해 적곤 했었다. 그때는 우울증을 겪을 당시여서 다른 것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 대학생이 되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고등학생들이 내가 겪었던 일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의 나에게... 고2와 고3 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강연을 가상으로 해보려 한다. 그럼 부족한 강연이나마 여러분들은 들어주시기 바란다.


안녕하십니까.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인 초긍정 오뚜기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제 고등학생 때의 얘기를 해드리면서 고등학교 진로 문제를 어떻게 현명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쯤이면 아니면 아주 오래전부터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그 고민이 점점 깊어지더니 제 자신을 삼키다 못해 지하동굴까지 끌고 가더군요. 하지만 여러분, 이렇게 중요한 시간에 고민만 하며 고통스럽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걸 알고 있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궁금하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저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지금부터 자세히 말씀드릴 예정이에요. 저는요,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님께서 영어공부를 힘들게 시키셔서 어릴 적부터 꿈이 외교관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원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고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초등학교 때와 중학교 때는 누가 봐도 모범생으로 살았지요.


그러다 드디어 고대하던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예상했던 대로 큰 물에서 노니까 제 세계 자체가 넓어지는 느낌이고 새로웠습니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기만 하면 저도 나중에 대물이 되어 있을 줄로만 알았지요. 하지만 중학교 때 외국어 고등학교를 준비하기 위한 특목고 학원을 다니면서 쫓기듯이 공부하며 남들을 따라가기 바빴던 제 모습이 계속 떠오르며 고등학생의 저를 괴롭혔습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한 공부가 남아있을 리가 없다며 저를 지독히도 건드려 댔지요. 그때 가서 저는 점점 겁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좋은 학교에 들어갔는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제가 정말 외교관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해 보게 되었지요. 어느덧 저는 겁을 잔뜩 집어 먹고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해도 안 될 것 같다는 무력감과 제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없다는 공포감에 점점 우울해졌습니다. 결국 저는 일반고로 전학을 가는 것으로 환경을 바꿔보자 했지요. 하지만 실은 알고 있었어요. 이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제 문제라는 것을요.


그래서 일반고로 전학을 가서는 공부가 다시 잘 되었냐고요? 아니요, 점점 곤두박질치던 성적은 물러날 때가 없었고 저는 삶을 포기하고자 했지요. 그렇게 고2 때부터 제 머릿속에는 이런 고민들이 잔뜩 들어가서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어요.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게 뭐야. 네 성적으로 할 수 있어? 지금 그 생각을 해서 뭐 해.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것 아니야?' 그 생각들은 심마가 되어 저를 바닥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런 고민들은 여러분들도 학교 생활을 하면서 한번 이상은 해보지 않으셨나요? 공부만 해도 바쁜데 선생님들이 진로 상담 주간이라며 종이를 내밀며 가득 채우라고 한 것을 바라보면 전부 저희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질문들로 가득합니다. 그때 여러분들 중 몇몇은 정해진 게 없어서 계속 미루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때,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 종이를 받았는데 한 달 뒤에 중간고사라면 여러분은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시험 중비 중 무엇에 초점을 맞추실 건가요?


목표가 없으면 공부도 안 되니 다 때려치우고 고민만 하다가 정답을 찾는 게 우선일까요, 아니면 눈앞에 닥친 시험이 더 중요할까요? 여러분들도 답은 알고 있습니다. 시험을 먼저 챙기셔야죠. 시험을 망치면 나중에 찾은 답을 가지고 나아갈 수 조차 없으니까요. 준비되어 있는 상태에서 선택을 하는 것은 가능하나, 아무것도 손에 쥔 게 없는데 고민만 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당장 그 종이를 선생님께서 내시라고 하는데 미루고만 있냐고요?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마음 깊이 갈망하고 좋아하는 일이 없나요? 하다못해 관심이 있는 일이라도 있긴 있을 겁니다. 남들에게 말을 하진 못하지만 소중한 무언가가 말입니다. 그것과 관련된 학과와 직업을 찾아보세요. 꼭 그곳에 갈 것이 아니라도, 그 직업으로 확정 지을 게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빈칸으로 두지 말고 그것으로 일단 채워 두세요. 그 종이는 여러분의 인생의 확정서가 아닙니다. 언제든 수정해도 되는 종이입니다. 선생님들도 그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어른들이 일단 정해두라고 하는 이유는 목적이 있어야 나아갈 수 있는 유형의 학생들이 꽤 많기 때문입니다.


확정된 목표가 아니더라도 형체가 흐릿하더라도 없는 것보단 결승선이 보이는 것이 달리기에 편하니까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데 나아가는 것은 힘들겠지요. 미래의 일을 당장 정할 수 없다면 당장 눈앞에 닥친 것부터 하나하나 처리해 나가세요. 다만, 그 고민에 대한 대충의 아주 대충의 스케치, 윤곽이라도 잡아두고 잠시 일시정지 하는 겁니다. 그리고 중요한 시험들과 관문들을 다 치르고 난 뒤에, 방학이 왔을 때, 쉬는 시간에 다시 끄집어내어 천천히 바라보며 생각하는 시간을 잔뜩 가지세요. 공부를 할 때는 공부만 하는 겁니다. 시험기간에 다들 공부에만 열심히 집중하며 잘만 하는데 자신은 흔들리고 있다고 불안해하지 마세요. 당신은 지극히 정상인 것이고 남들도 속으로는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다만, 계속 불안한 상태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잡생각을 몰아내야 합니다. 자, 시험이 끝났다고 생각합시다. 이제 그 답도 없는 고민을 다시 꺼내어 들여다보는데 윤곽을 잡으라 해서 대충 잡긴 했는데 할 수 있을지 내 성적이 그에 미칠지도 잘 모르겠어서 다시 불안감이 생깁니다.


괜찮습니다. 일단 최선을 다 하기만 해도 됩니다. 그렇게 하다가 안 되면 다른 길을 찾아가면 됩니다. 그 다른 길을 찾아갔는데 그때 가서 후회하면 어떡하냐고요? 그때 또 길을 틀면 됩니다. 제 나이 때도, 저보다 나이가 많은 대학생들도, 심지어 직장인들도 진로를 수십 번도 더 바꾸기도 합니다. 그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진로가 바뀌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갈팡질팡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위의 언급한 사람들도 그러는데, 지금 사회에 나가보지 않은 여러분들은 아직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완벽한 선택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제든 수정을 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 즉,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정해지지 않았다고 조급해하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학과를 정할 때도 부정적인 면만 보고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어느 과를 가더라도 자기 전공은 마음에 안 들기 십상입니다. 우리는 좀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윤곽만 가지고 가려고 노력하세요.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것, 나아가고 싶은 방향, 구체적인 학과일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로봇공학에 관심이 있으면 꼭 공학과에 가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다. 이 느낌만 가져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걸 전공으로 할지 아니면 취미로 할지는 나중에 정하면 됩니다.


다만, 고등학생 때 그것을 임의로 정해놓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도, 나중에 바꿔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진로를 정하라고 재촉하는 것은 결코 여러분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닌 여러분을 더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속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분들은 그것을 자신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한 것이라고 인지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인지하면 그게 거대한 장벽이 아니라 쿠션같이 느껴질 것입니다. 언제나 가져야 하는 생각과 마음가짐은 '나는 대단한 사람이니 언제든 내 마음이 바뀌어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어. 하지만 미래에 하고 싶은 게 바뀌면 내가 준비되어 있어야 하니 무엇이든 열심히 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야겠다.' 이것입니다. 부모님이 "너는 왜 이리 결정을 못하고 마음이 갈대 같니."

이렇게 핀잔을 주셔도 괜찮습니다. 내가 계속 흔들린다는 것은 내가 큰 사람이 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여러분보다 진짜 조금 더 살았을 뿐이지만 그렇게 왔다 갔다 하고, 길을 이리저리 틀어도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정말 괜찮습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진로 결정으로 인해 너무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길을 늦게 정하다라도, 정한 길에 남들보다 늦게 도착하더라도 시작만 하면 정말 반은 한 것입니다. 스스로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믿어주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 마음가짐만 있다면 속도는 절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민을 안 하고 던져두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고민이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머리를 써서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꺼내 처리하는 것은 현명한 것입니다. 결코 놓지 않되,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보다는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책상 앞에 앉아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뭘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지 이런 생각들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당장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적어보고 그것부터 한 뒤에 다시 돌아오십시오. 그렇게 하다 보면 불확실한 질문에도 답이 하나둘씩 달리고 스케치는 점점 정교한 수채화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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