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유
이젠 더 이상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완벽주의 성향도,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도 사라졌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외롭고 어두웠던 초, 중, 고 시절이었기에 대학에 와서 친구가 여럿 생기고 학업도 잘 풀리기 시작하니 믿을 수가 없었다. 행복할수록 조바심이 나고, 언제 또 고꾸라질지 몰라 두려웠다. 그 결과, 남의 눈치를 이전보다 더 많이 보게 되었다. 내 최선의 방어작용이었을지 몰라도 그게 오히려 역효과가 나 다른 사람들을 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흉기가 될 줄은 몰랐다. 세 명이서 모이면 당연히 한 명은 소외를 느낀다. 하지만 그걸 기분 나빠한다면 그 관계망에서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지사다. 하지만 나는 표정으로 드러내고 말았다. 이전부터 나는 내 감정을 숨기는 것을 정말 못했다.
엄마는 애초에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마인드를 바꾸라고 했지만 이미 내 반응은 주변 사람들을 눈치 보게 만들었다. 문제는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눈치를 보는 것을 내가 느꼈다는 것이다. 내 머릿속은 이미 최악의 시나리오를 검색하고 있었고, 더욱더 눈치를 보게 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러면 주변 사람들은 지쳐 나가떨어질 것만 같았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더 어려워졌다. 교수님들도, 동기들도, 선배들도, 언니들도 전부 나에게는 인간 형태의 과제일 뿐이었다. 인생에서 있어 인간관계는 나에게 무거운 숙제일 뿐이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항상 바라면서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에 가끔이라도 봐주길 바라는 역설적인 인간이 되어갔다. 그 결과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기가 빨리고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학업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발표를 하는 동안 내가 무슨 괴상한 소리를 지껄였는지 모르겠다. 원래라면 고심해서 적어 내려갔을 발표문인데 대충 썼다는 생각이 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살아오면서 가장 역설적이라고 느낀 것은...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내게 사람들은 내가 눈치가 없다고 했다. 이에 상처받은 나는 눈치를 챙기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이 바라는 것은 센스였지, 소심함이 아니었다. 융통성을 기르랬지 눈치를 보라는 얘기는 아니었다는 그 말이 나는 제일 억울했고 답답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걸 빌어먹을 PMS 탓으로 돌려봐도 이미 내 인간관계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학업에 대한 흥미와 집중도는 빠르게 식어 버리고 있다.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면서도 훌훌 털어버리고 잊어서 현재를 살기를 원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자니 한숨이 나왔다. 결론은 이미 지어졌다. 눈치를 너무 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때문에 주변을 덜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의문인 것은 내게 있어 그것은 불가항력일까 아니면 살을 깎는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 애쓰며 아등바등 노력하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은 그걸 왜 연습하고 노력하냐고 물었다. 본디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라 하며 말이다. 나는 그들이 신기했다. 내게 있어서는 공부보다도 더 힘든 게 남 눈치를 안 보는 것이니 말이다. 이전에는 나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기 때문에 남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눈치는 나의 악습관으로 몸에 깊이 배어 있었다. 상처받을 걸 두려워해서 눈치를 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눈치를 봐도 결국에 상처를 입는 것은 나다. 고등학생 때라면 내 성격을 저주했겠지만 이제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 항상 그래 왔듯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털고 일어나야겠지. 안 좋은 일들은 바로 잊어버리도록.... 노력... 해야겠지.
잊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남이 보면 그것 또한 왜 노력을 해야 되는 거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나는 남에게 싫은 소리 듣는 게 죽기 보다도 싫었다. 그게 혼나는 것이든 내게 좋은 소리든 이유 없이 나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그 결과 어른들은 나를 변하지 않는 일관적인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고등학생 때 죽네 마네 하며 엄마와 싸우며 주고받았던 말들은 나를 벼랑으로 내몬 적도 있다. 그때의 말들을 하나하나 기억하지는 않지만 자동적으로 자기 방어 작용이 일어날 만큼 아직도 그때의 기분이 몸에 남아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탓하면서 또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는 간신히 자해 충동을 막는 습관도 조금은 남아있다. 한 때 내 목표는 어떤 말에도 끄떡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강철과 같은 멘탈을 가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행복해지고 안일해지다 보면 그 목표는 쉬이 잊힌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다시 그 목표가 떠오르는 때가 오면 또다시 그때가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