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자체에 대한 고찰
엄마는 내가 졸업하고 나서 작가를 하겠답시고 취업을 팽개치고 방에만 박힐까봐 걱정하시고 있다. 가면 갈수록 내가 속한 과가 안심이 되고 좋아지는 건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서 그런 것일까. 방학 때 하루종일 글을 쓰며 심신을 안정시키고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이를 본 엄마가 나에게 윽박을 질러 겨울 방학때는 꼼짝없이 일만 하게 생겼다. 학기중에는 공부도 토익도 열심히 해서 내가 편입을 하길 원하는 부모님의 가장 큰 걱정은 나의 취업이다. 아직 1학년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내가 들어간 과를 보면 취업은 이미 물 건너 간 것만 같아 보이나 보다. 개학을 맞이해서 기숙사에 들어와 짐을 풀고 청소를 하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이렇게 앉아서 글 쓰는 것이 휴식만 같게 느껴진다. 평소에 소설을 쓰려고 할 때는 빨리 끝내버리고 싶어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데 말이다. 이미 방학동안에 100편에 달하는 웹소설 하나를 써서 공모전에 제출했고, 일을 벌리기 좋아하는 성향 탓에 2개를 더 시작했다. 학기중에는 시간이 없을 걸 알지만 살면서 숨 쉴 구멍 하나 정도는 필요 했기에 딴짓할 때 적절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둔 셈이다. 내가 재능이 없다는 것은 이미 인정했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다. 편입을 하더라도 취미로 글을 쓸 것이고, 나중에 글과 상관없는 직업을 택하더라도 그 일로 열심히 돈을 모아 나중에 글쓰는데 전부 쏟아부을 것이다.
웹소설이란 시장은 학교에서 과제로 내는 소설과는 질이 매우 틀렸다. 둘 다 어느것이 더 어려운 지는 판별할 수 없으나 각자 다른 포인트에서 어려움이 나타났다. 쓰는 방식도 좀 틀렸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새 웹소설이든 학교 과제든 비슷한 형식으로 쓰고 있었다. 둘 다 가독성이 좋아야 좋은 평을 받는 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놈의 가독성은 다른 사람이 읽어주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는 것 아닌가. 요즘들어 나에게 피드백은 사막에 나타난 오아시스 처럼 귀중한 것이 되었다. 댓글에 내용적인 부분이나 형식을 좀 바꿨을 좋겠다고 한 분들께 너무 감사할 정도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한 나의 의견이 바뀌어 있었다.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고 어떤 말이라도 해주는 게 감사한 거라고 했던 기안 84의 말이 이해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웹툰 작가를 우상으로 두지 않는다. 웹툰은 그림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기 때문에 웹툰과 그냥 글의 큰 차이점을 몸소 깨닫는다.
실은 우상 자체를 찾지 못했다. 우상을 찾는다고 꼭 그 사람과 비슷한 부류와 형식의 소설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 소설의 방향이나 취향이 너무 확고해서 남의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 것만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작품을 보는 눈이 생기지 않은 것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어떤 것이 좋은지 나쁜지 판별하기가 어렵다. 내 마음에 든다고 좋은 작품, 내 마음에 안 들거나 이해가 안 된다고 나쁜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만이 작품을 보는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그 기준이 너무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내 글쓰기는 영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영감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 앉아 시작해서 완결을 낼 때도 있고, 멈추지 않고 썼다가 다시 떠오르면 이어서 쓸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너무 조급하게 쓴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마치 영감이 하늘에 있는 구름 처럼 바로 떠나갈까봐 어떻게든 묶어 놓으려고 단숨에 숨도 안 쉬고 적는 느낌이다. 그러면 독자들도 숨 가빠할 께 뻔한 걸 알면서도 이미 중반을 달려오다 보면 멈출 수 없게 된다.
멈추는 순간 처음부터 다시 엎어버려야 한다는 걸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