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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긍정 오뚜기 Feb 17. 2024

찾아오는 위기를 회피하지 않는 법

도망치지 않기 위한 노력

  알바를 시작한 지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지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그다지 바빠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비교를 하는 것은 그만하고 싶다. 첫 알바를 하면서 고비가 여러 차례 있었고 알바 계약기간 2주 정도 남긴 시점, 또 한 번 나는 무너질 뻔했다. 엄마는 그렇게 멘탈이 약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거냐는 예상되는 말을 꺼냈고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나가면 다른 알바를 구해도 조금만 하다 그만두는 사람이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일하는 내내 힘들기만 했던 것도 아니고 뿌듯하기도 하고 보람차기도 하고 버티고 있는 나 자신이 고맙기도 했다.  성격상 타인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쓰는 난 모르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도, 그 사람들과 함께 12시간 이상 일하는 것도 버거웠다. 다른 사람들이 내 행동과 말에 뭐라고 수군거릴지 내내 신경 썼고, 그렇게 해서는 어디에서도 함께 일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타인을 신경 쓸 때마다 괜찮다며 처음이니까 실수할 수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거리면서 다시 힘냈다. 하지만 일을 못하면 뒤에서 말이 나오는 건 당연했고 몰라서 가만히 있으면 혼났고 알아서 일을 찾아 하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핀잔을 들었다. 난 그때마다 웃으려고 애쓰며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내가 또 겁먹은 표정을 짓거나 눈치 보는 것을 들키면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실은 중학생 때부터 나는 성격을 고치기 위해 회피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했다. 내게 다가오는 자극들을 피하지 않기 위해서 오히려 찾아다니며 일을 벌였다. 동아리는 적어도 항상 1개 이상은 가입했었고, 내가 속해있는 곳의 회장, 부회장, 그게 아니라면 간부라도 하겠다고 항상 손을 들며 일단 시도했었다. 하지만 간혹 잘 안 될 때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그게 온전히 내 탓만은 아니라고 멘탈을 다잡았다.


 나는 중간이 없는 사람이다. 자책을 시작하면 쉽게 멈추기 힘들었고 남의 눈치를 안 보기로 마음먹으면 아예 보지 않아 눈치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알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눈치를 보고 있으면 그 때문에 일이 잘 안 돼서 피해를 주게 되었고, 눈치를 안 보고 있으면 그냥 불량해 보였다. 솔직히 이쯤 되니 다 포기하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두려웠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똑같으면 어쩔까, 내가 여기서 포기하게 되면 나중에도 똑같은 상황이 닥쳐왔을 때 포기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무엇보다 고등학생 때 정말 모든 걸 포기하고 삶마저 포기하려 했던 그때가 떠올라 난 포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더라도 성장하고 싶었다. 그게 너무 힘들고 피해 주는 게 너무 싫어서 생산직 반장님께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할까 말까 수십 번을 고민했다. 뒤에서 그냥 잘라야 한다는 수군거림이 다 들리는데도 모르는 척하고 그냥 일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때마다 제품을 들고 있는 손이 떨리면서 힘이 빠졌다. 여기는 일하는 곳이라고 울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그치며 억지로 눈물을 참았다.


 누가 왜 그렇게 화난 표정을 짓고 있냐 항상 안 좋은 일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할 때마다 괜찮다며 원래 웃상이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했다.  표정을 숨기고 싶었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넘길 수 있는 사람인 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척하는 게 주변 사람들은 더 힘들게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마인드 자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었다. 항상 멘탈을 관리하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보며 아니면 관련 강의를 들으며 마음과 머리를 비우기 위해 노력했다. 나만의 테라피 메뉴얼도 생겼다. 나는 생각 중독이나 피해의식이 나를 휘감을 때마다 우선 그 자리에서 생각을 비우고 현재 일에 집중하기로 한 뒤, 나중에 멘탈을 다시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했다. 글을 쓰거나 힘이 되는 음악을 듣거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휴일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최대한 깔끔한 상태를 유지한 뒤, 가끔 화장을 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나 자신이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무엇보다 슬픈 음악을 들으면서 내 안의 감정을 다 비워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과정이 끝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 걷거나 뛰고 움직여야만 하는 일들을 계획했다. 나를 괴롭게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뭔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 자신을 위로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내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을까 이 시간에 공부를 해야 내 미래가 더 편해지지 않을까 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를 하나하나 먹을수록 이렇게 마음을 다 잡을 시간조차 부족해지면 내가 버틸 수 있을지도 걱정됐다. 하지만 계속 걱정만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기에 미래의 일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불안과 걱정을 최대한 덜며 현재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되는 것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것이니 앞으로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거나 그게 아니면 신경을 끄면 된다.


  일하면서 느끼는 게 참 많았다. 부모님이 내게 잔소리했던 것은 미래에 내가 어떻게 될지 대충 보이시기 때문에 한 얘기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들의 말처럼 나는 결국 내 과거에 대한 후회를 했으며 초중고 때 내게 다가오는 작은 고난들을 회피했던 것에 대해 창피함을 느꼈다. 그리고 힘들더라도 계속했었어야만 했던 이유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깨달은 순간, 또 느꼈다. 이미 조금 늦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야만 하는 이유는 그 자리에, 즉, 나를 괴롭히는 그 과거에 계속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그것을 싫어하니 이를 해소해 주기 위해서라도, 나 자신을 위해서 당장은 아프더라도 성장은 해야 한다. 그게 내가 지금 너무 힘든데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언젠가는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고등학생 때 독서실 옥상에서 나는 더 이상 포기하지 않기로 도망치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도망치고 싶어 하고 다시 약해지려 하는 나 자신이 보였다.


 다른 누군가는 내게 그 정도로 힘들다고 그러냐고 네가 뭐가 힘드냐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고개가 숙여졌다.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가 한없이 한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성격으로 인해 자꾸 회피하는 습관이 들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남에게 의지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직접 있는 게 없었고 중학생 때가 되어 자신이 변해야 함을 절실하게 느껴서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노력하다 보니 서툴러서 실패했다. 결과 성격은 다시 회피하는 성격으로 굳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고 싶어서 무리수를 뒀다. 외국어 고등학교에 가서 잘하는 아이들 속에서 경쟁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보고 배우면 내가 바뀔 있다고 굳게 믿었다. 물론 속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변하는 없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죽기 살기로 내가 노력해야 내가 원하는 대로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내게는 당시 정도의 힘이 없었다.


  나서지 않고 우물쭈물하던 아이는 외국어 고등학교에 가서 그만 더욱 주눅이 들고 말았다. 그때 가서 인생 최대의 자책을 했다. 결국 나는 죽을 때까지 부모님과 주변사람들에게 폐만 끼치다 죽게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노력한 것도 아닌데 이상 도전과 시도를 하는 두려워졌다. 도전과 시도를 해내는 친구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금 나도 있다고 마음을 먹고 내디뎠다. 문제는 그때부터 타인의 시선을 더욱 신경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자존감을 잃어갔고 결국 나는 그곳을 도망쳤다. 일반고로 전학을 갔을 때는 이미 모든 걸 포기한 상태였다. 주변 친구들은 나중에 수도권 대학에 가서 행복하게 꿈을 이루고 있을 동안에 나는 도대체 어디까지 내려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자 살기가 싫었다. 주변에서 우울할 시간도 있고 참 인생 편하게 산다고 할 때마다 나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스스로 괜찮아지면 안 된다고. 내가 지금 편하면 안 된다고 행복하면 안 된다고 자책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 발을 내딛으려고 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시간이 꽤 많이 지나 있었다. 나는 부랴부랴 갈 수 있는 대학에 내가 가고 싶은 과를 택했다. 어차피 힘들게 살 거면 남들 시선 다 떠나서 내가 나중에 돈을 얼마 벌든지 다 떠나서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 사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간과했던 것은 내가 그 힘듦을 감당할 수 있느냐를 고려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엄마가 내게 너는 동작도 느린데 성격도 급하고 스스로 나서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냐고 그렇다고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하기를 하냐고 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그때서야 떠올랐다. 직접 일을 해보니 엄마가 나를 왜 그렇게 걱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일을 하다 보니 내 부족한 점들이 눈에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피하지 않고 고쳐나가려고 애를 썼다. 다만 이젠 내가 경험하는 것들이 전부 진짜 사회에 해당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내 나이가 벌써 스물 하나, 성인에 해당하는 나이였다. 책임이 무엇인지 살짝 깨닫게 시작하는 나이가 벌써 되어버렸다. 수많은 고민과 생각들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책임을 지기 시작할 나이가 되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부딪혀 볼 걸, 더 깨지고 단단해질 걸, 어려서 회피하기만 했던 게 묵직하게 마음속에 내려앉았다. 이젠 자책만 하고 앉아있는다고 봐줄 사람은 없었다.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지고 어떤 결과가 오던지 감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니었지만 어떡하냐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기엔 시간이 참 빨리 흘러간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난 제대로 된 노력을 하기 위해 차근차근 해보기로 결심했다. 평소보다 더 애를 쓴 날에는 몸 상태가 안 좋아져 약국에 가 약을 사 오면서 겨우 이 정도로 힘들어하냐고 스스로를 다그치다가도 미소 지으며 어쩔 수 없다며 다시 노력하기 시작했다.


 아프다고 결근을 할 수도 없고 계약기간 전까지, 내 대타가 오기 전까지 함부로 나갔다간 민폐가 되는 곳이 알바였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내가 사장이라도 교육 다 받아놓고 애매하게 나가면 화가 나는 게 당연지사다. 그러니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는 김에, 더 이상 회피하지 않기로 다시 다짐하고 내가 성장하는 기회로 모든 힘든 상황은 내 성장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또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잊고 있었다. 요즘은 알바를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지인이 아니었다면 이곳도 내가 들어오기는 힘든 곳이었다는 걸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너무 과하게 감사하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일이 더 안 되기 때문이다. 일단 들어왔으니 처음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던 때처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난 이제 남들이 너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고 하는 말에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생각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한 나는 작은 일도 크게 느끼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2배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포기만 안 한다면 결국 살아갈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조금은 무던해지기 위한 노력을 하며 제대로 하려는 노력도 병행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더 힘이 들고 바보같이 보이는 방법이라 해도 나는 억울해하지 않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할 각오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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