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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긍정 오뚜기 Feb 28. 2024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

성공을 위한 숱한 경험 중 하나일 뿐

  남들이 내가 쓴 글을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내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여기에 펼쳐 보려고 한다. 나는 대학에 들어온 순간부터 계속 불안해했다. 졸업하고 나서 취업을 못하면 어쩌지, 내가 나중에 고학년이 되었을 때 내 친구들은 전부 재수, 편입 등으로 떠나가거나 남은 애들은 내가 다니는 학과에서 자신의 길을 확실하게 찾아 살길을 찾아나가는데 나만 그 자리 그대로 있으면 어쩌지 등의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그래서 불안을 없앨 방법으로 나는 학점 사냥꾼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라도 있으면 내 마음이 조금은 더 편안해지고 자존감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1학년 때의 목표인 과탑을 해내고 말았다. 목표를 이루었으니 성취라는 걸 해냈으니 조금은 기뻐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행복해했고, 앞으로도 이렇게만 열심히 살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현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앞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면 뒤의 일은 알아서 될 것이다라는 이상한 일반화에 빠져버린 것이다.

 

  1학년 겨울방학,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내 글은 뛰어나지 않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창의력이 발달한 사람한 사람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꼈다. 교수님은 괜찮다며 노력해 보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 노력을 위한 책 읽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았다.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어떻게 읽었느냐가 중요한데 나는 성급해져서 무조건 도서관에 가서 빌려 한 권이라도 그날 다 읽으려고 노력했다. '아 방학 때는 어려운 책, 학과에서 당연히 읽으라는 책 열 권 이상은 읽어야 개강하고 다른 친구들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 텐데...' 내 지식이 얕다는 걸 빚 좋은 개살구라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과탑을 하고 나니 그걸 들키게 되면 내 자신이 초라해져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내게 좋은 학점을 준 교수님들조차 그 사실을 후회하진 않을까 등의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나는 이게 다 내 욕심이라고 생각하며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편입은 내게 있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자, 도피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망친 곳에서 낙원은 없다는 말처럼 거기서는 무조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어디를 가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내가 정말 도전하고 싶은 이유는 단 한 번이라도 내 기준에서의 성공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심리적으로 도피해 버린 것이 너무 부끄러웠고 괴로웠다. 자해를 할 정도로 이 부분은 내 발목을 계속 잡더니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 시점인 대학 때까지 이어지는 듯했다. '과거에 부모님이 지원해 줄 때 공부할 걸... 그때 포기하지 말고 어떻게든 해낼걸... 성격 탓하고 패배주의에 찌들어서 도망치지 말 걸...' 나도 안다. 이제 이 후회들은 소용이 없고 내게 있어 이득이 하나도 없다.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똑같이 흘러가고 생각은 그 자리에 남아도 현실은 계속 앞만 보고 달린다. 생각에서 벗어나 현실을 보고 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노력을 하기 시작하니 고통스러웠다.

   

   남들이 다 행복할 때 누군가는 성취감 덕분에 자기 자신을 믿으면서 하나씩 해 나가고 바쁘더라도 힘들더라도 웃으며 살아갈 때 나는 우울감과 불안감과 싸우며 앞까지 보고 나아가야만 했다. 주변에서는 제발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라. 지금의 너는 앞만 보고 달려도 모자라고 노력할 시기라고 했다. 하지만 노력을 시작하면 조급해지고 눈물이 나왔다. 자기 자신을 질책하게 됐다. 스스로를 미워하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멘탈을 다잡고 다시 나아가게 되는 이유는 지금 또 포기하면 이 불안과 우울을 내년에도 또는 미래에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해내고 싶은데 그 바람에 요행을 바라고 지금 하는 것 외에 다른 것들에 정신이 팔리게 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쉬고 있는 순간이 편치 않았다. 결국 쉬지도 노력하지도 못한 채 그 중간을 걷다가 심연으로 빠져드는 내 자신을 보고 '내가 또 굴을 파고 있구나. 빠져나와라.'라는 말을 되뇌었다. 이제 와서 난 왜 남들만큼 안 되는지, 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지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으려고 한다. 억지로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할수록 역효과가 났고 그것은 어떻게 보면 살아온 습관이기도 했다.

   

   이렇게 가끔씩 내 감정과 솔직하게 마주치는 순간들에는 그 심연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안정감을 찾아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실패나 비판, 지적에 약한 예민한 사람이다. 타인 민감성이 다른 모든 요소들보다 높게 나왔고, 그로 인해 나머지 살아가는데 필요한 부분들은 낮게 나왔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고 내 자신이 원하는 걸 계속 묻고 능동적으로 사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나는 조급했다. 성격이 급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눈치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으며, 항상 작은 것에도 쉽게 우울해지는 사람으로 치부됐다. 고작 두 달 동안 공장에서 알바를 했을 뿐인데, 나만 힘든 것도 아니고 다들 처음 배울 때는 혼나가면서 배우고 실수도 하고 그래도 웃고 그렇게 점점 발전해 나가는 건데 나만 왜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지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학교에서의 나는 안 이렇다고 학교에 가면 다시 밝아져서 이것저것 해보며 자신감을 쌓고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현실감 없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인지행동 심리학 책을 읽으면서 부정적인 사고를 고쳐보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책을 읽고 남이 나를 바라볼 때 항상 나에 대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진 않는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그 사람은 집에 가면 오늘 나를 마주친 것 자체에 대해 잊었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속에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알바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도 이제 자신의 생활로 돌아갔을 것이고,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보았느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내 인생을 사는 나이고, 나는 그들의 감정과 생각까지 짊어질 의무가 없다. 나는 이제부터의 내 삶을 살아가면 된다. 문제는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상황에 관한 것인데 그럴 때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을 노력을 연습해 보고 가야겠다. 느리고 답답하고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건 나이니까. 상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에서 스스로 멘탈에 관한 부분에서 더 노력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진 않다.

   

   사람들은 다 다르게 살아왔고,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노력을 더 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그들이 나보다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부분에서 노력이 더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기로 했다. 비록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은 내게 늦다고 더 일찍 했어야 한다고 소리치더라도 이미 내 상태가 이런 걸 어찌하랴. 좀 이기적이라도 준비가 안 됐더라도 내 인생이니까 남들이 뭐라 하건 간에 해보고 싶다. '쟤는 뭐 저 정도도 안 되는데 왜 나와서 남들에게 피해를 줄까.' '제발 일머리 없는 사람들은 알바하러 나오지 말아 줘, 제발.' 이건 타인의 생각, 타인의 감정이다. 내가 이런 것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다. 내가 내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는 이상, 나에게는 기회인 것이고 남한테 미안해서 도망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제 감정적인 부분은 다 놓아주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비교하지 말고, 열등의식 가지지 말자. 제대로 된 알바도 나는 처음이었다. 공장에서 12시간씩 주, 야 교대로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1달 반이라도 버틴 것을 대단하게 여기자. 그거면 된 거다.  방학 때 내가 한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말자, 스스로 돈을 번 것이고 충분히 떳떳해도 된다. 처음이라 남들에게 피해 주게 된 것에 대해 자책하지 말자. 정말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자책해서 스스로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큰 탓에 이리된 것이다.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하는 말도 한 번에 알아듣고 해야 할 일도 바로바로 찾아서 하되, 아무거나 건드리지 말고 물어보고 하자. 이에 답답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화를 내는 사람도 간혹 가다 있다. 하지만 그 감정에 빠져서 너무 기분 나빠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그 일을 못하고 포기하고 나오게 된다. 그 포기에 있어서 나는 민감하고 예민하니 어떻게든 버티는 것을 목적으로 스스로 멘탈 관리를 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자.

  

   모든 일들이 온전히 나의 탓도 아니었고, 그중에서 나의 잘못도 분명히 존재하는 2달간의 방학이었다. 경험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이 많았고,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만으로도 감사하는 게 맞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면 결국 내 자신이 점점 사라져 가고 몸도 마음도 병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고 그 과정에서 느리다고 남들이 답답해하며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에 대해 기분 나빠하지 않는 것.  내 잘못이면 고쳐 나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되고, 그들이 감정적으로 너무 화를 내면 그 감정은 그들의 것이다. 계속 혼난다고 내 자신이 실패자인 것도 아니다. 스스로가 싫어진다는 생각이 들면 멈춰서 그만하자.

  

   너무 느리다는 소리를 들어서 뭐든 빠르게, 알아서 할 일을 찾아 해야만 할 것 같아서 해도 되지 않는 일까지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A처럼 하라는데 다른 사람은 B처럼 하라 그랬다. 공장 반장님은 더 이상의 교육은 안 시킬 테니 일단 지금까지 배운 것 만이라도 잘하라고 했다. 나는 그 두 개도 못해내는 자신이 싫었다. 내가 융통성과 눈치가 없고 욕심이 많은 완벽주의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포기하고 싶어진 순간이 찾아왔을 때,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며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한편, 우울감이 밀려 들어왔다. 뒤에서 수군거리며 일 못한다고 쟤는 왜 저러냐는 말들이 나왔을 때는 살기 싫어졌다. 과거 무기력에 빠졌던 때가 기억났고 겪었던 우울증이 재발할 것 같았다. 밤에 잠이 안 오는 이유는 내가 우울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이 힘들어서라고 스스로 되뇌며 딱 일주일만 더, 딱 하루만 더, 이렇게 포기하지 않는 것을 통해 무기력 상태로 빠지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정신이 다 털리고 공장을 나온 그날, 끝난 것에 행복해하면서 쉼을 가지고 하루정도 가족들과 찜질방에 가서 편하진 않은 마음으로 쉬었다. 몇 달씩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내 상황을 보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것 같아 불안했다. '더 힘든 곳에 가면 나는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아니야, 같은 나이인 친구도 나보다 더 먼저 그만뒀는걸.'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정신과를 찾게 되면 그게 습관이 되진 않을까, 약을 먹어도 가장 중요한 건 내 의지고 행동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약 없이 해결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분명 이 정도로 이렇게까지 힘들고 싶지도 않았고 힘들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나마 그 공장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과 대판 싸우고 그만둔 용기 있는 언니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마음을 조금은 편하게 먹었다. 그 언니는 스트레스로 살이 엄청 빠졌다고 했다.

 

   나는 일은 엄청 힘든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 했던 몸이 더 힘들었던 일들이 차라리 걱정과 불안이 없어 좋았다. 그냥 서서 12시간을 새벽에 일하는 게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손이 까지고 피가 나더라도 무거워서 허리가 아프더라도 쉴 새 없이 바쁜 게 더 편했다.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 나를 욕할 것 같았고 뭐라 할 것만 같았다. 그런 곳이 알바라고 믿었고 사회라고 믿었다. 세상을 너무 단편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내 사고를 바꿔 보기로 결심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남을 미워하고 있고 탓하고, 스스로도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 무기력이 찾아왔다.  그 후 내 자신을 위한 시간을 좀 갖고 싶었는데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취소했고 나는 알바가 끝난 다음 날 바로 독서실에 가 과제를 하기 시작했다. 문창과 학생의 과제는 대부분이 소설이다. 그 당시 소설이 잘 쓰일 리가 없었다.

  

   공장에 있었을 때, 방학 때 자기 계발을 조금이라도 하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바로 편입을 준비하겠다고 마음먹었고, 학교 세 곳과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에 전화를 돌려가며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뭐라도 해야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고, 둘째로 알바만 끝나면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뭐든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마지막으로, 알바가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은 맞지만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일이 하기 싫었던 것은 맞지만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억울하지는 않았다. 내가 못해서 한 소리 듣는 것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가장 버티기 힘들었던 것은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도 많이 버는 정직원들과 내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했을 때는 '난 알바인데 왜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실은 공장 일을 못했기에 그분들에 비해 나는 열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니 내가 대학생인지 공장 직원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일하고 나면 가서 자고 그다음 날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니 내가 학생이라는 자각이 사라져 있었다. 그러다 친구들의 소식이 들려오면 불안해하고 '나도 공부해야 하는데, 나도 과제해야 하는데.' 하면서 주말이 되어서 하려니 다 마무리가 안 될 분량이었다. 그래도 해나가려고 애썼고 그 주말이 너무 소중해졌다. 몸이 너무 힘든 날에는 쉬면서도 한편으로는 개강 걱정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 바람에 일 자체에도 지장이 가고, 나는 이기적이고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공장 안에서 더 이상 웃지도 않았고 사람을 피했으며 인사도 잘 못했다. 손에 펜이 잡히지 않았고 눈물만 났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때가 다시 온 것이다. 스스로 멘탈이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알바 하나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아직 그리 단단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자꾸 알바 안 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졌고, 같이 알바하고 있는 오빠, 언니들을 보면 내가 너무 무른 사람인 것만 같았다.  

  

  일 자체에 집중하는 게 답이라는 걸 깨닫고 열심히 하려는데 실수가 생겨 계속 욕먹는 게 내가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어서라고 생각해서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애쓰려고 할수록 나는 계속 출근하기가 싫어졌다. 그 원인이 부정적인 사고라는 것을 깨닫고 심리학 책과 인지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았다. 알바가 끝난 이후로 다시 중심을 잡으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다. 이틀 뒤면 개강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 안에 해내는 수밖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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