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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긍정 오뚜기 May 06. 2024

다시 찾아온 우울증에 대하여

허허벌판에 다시 놓이다

난 대학교 1학년 때 과탑을 찍는 것에 성공했다. 내가 목표한 것을 완수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였다. 예전부터 이리저리 흔들리던 내 진로에 대한 기준은 대학에 와서도 변함이 없었다. 글 쓰는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하자, 나는 생각이 많아졌고 대학생활이 힘들어졌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한 줄 알았는데 내가 쓴 글들은 내 감정들의 집합소일 뿐, 어찌 보면 현실도피의 출구였다. 매일을 후회하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를 바라보며 나는 언젠가 다시 무너질 나 자신을 예상했었던 것을 떠올렸다. 이미 한 번 이겨냈으니 두 번째는 어떻게 이겨낼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 찾아온 우울증은 더 많은 수의 약과 충동과 무기력을 가져왔다.  보통 사람들은 그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을 쓰고 발버둥을 칠 것이다. 하지만 난 마치 머리가 마비가 된 듯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 또한 한 구석에 가지고 있었다. 멘탈이 약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스물한 살의 나는 또다시 우울증이라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 이 아이를 만날 때는 학교라는 울타리가 있었다. 그래서 도움을 받기가 쉬웠고, 내 나름대로 방법도 구축해 두었다. 하지만 그렇게 우울로 인한 공백기를 가지고 난 다음 다시 대학에 갔을 때 그만큼의 공백, 즉 깨진 틈은 메꿔지지 않았다.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진로에 대한 고민은 허허벌판에 던져진 채 이리저리 헤매는 꼴이었고, 다들 조금씩의 우울은 당연히 가지고 살아가는데 고등학생 때의 우울을 이겨냈다는 착각에 빠져 너무 행복해하고 그 행복이 끝날까 봐 불안해하고 결국 힘들게 첫 알바를 해낸 후 공허함이 벌어졌다. 내가 잃어버렸던 시간들은 그대로 내 부족함을 끌어안고 있었다. 


 내가 이번 위기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충동적으로 대안 없이 대학을 나오자마자 후회를 했다.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면서도 나는 깨달은 게 없다고 느꼈다. 수능을 다시 준비한다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그 순간, 다시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 깨달았다. 나는 우울을 평생 가지고 가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어느 정도 가지고 있으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지 난 또 피해버렸구나. 내가 가지고 있던 약간의 정신줄도 돌아오지 않는다. 행복했던 때를 계속 떠올리며 작가가 되려고 환상의 나래를 펼치고 글을 계속 썼던 나날들을 떠올렸다.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지려고 했는데 이 모든 게 다 내가 자초한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발목을 잡은 채 나를 놓아주지 않는 이 아이는 내가 빈틈을 보이는 순간 나를 덮쳐왔다. 깜깜한 터널 속에서 나는 손가락을 다시 까딱하기 위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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