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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긍정 오뚜기 Jul 14. 2024

한 번 더 일어서기 위해서

드디어 깨달은 책의 중요성

  4달의 고립 끝에 나는 더 이상 이 상태에 머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상담을 받는 것에 대해 반대했고, 내가 약물자해를 한 뒤 응급실에 입원했던 후에도 가족상담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절실히 이 난관을 헤쳐나가고 싶었고 결국 고등학생 때 뵈었던 상담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은 바로 나를 만나주셨고 카페에서 내 고민을 말하고 나니 한결 개운해졌다. 자기혐오와 절망으로 점철된 내게 그 대화는 또다시 찾아온 우울증이라는 친구를 이겨내갰다는 포부였다. 그리고 이게 바로 내 장점이었다. 도움이 필요할 땐 도움을 청할 줄 안다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 레이브라는 이름까지 붙였던 내 우울증은 예상했던 시기에 다시 찾아왔고 이번엔 저번에 나를 잡아먹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인지 나를 죽이려 들었다. 그 애의 꼬드김에 나는 정말 모든 걸 놓고 싶었고 잠깐 잘못된 생각을 했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보고 우셨고, 비슷한 악마를 지니고 있던 외가 쪽 할머니들은 나를 이해해 주셨다. 


 병원에서 외할머니는 나를 돌봐주시면서 우울증은 내 탓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조금 천천히 나아가기만 한다는 사실을 되새겨 주셨다. 문제는 이번 일로 인해 나는 저혈압이 왔고 퇴원을 하고 나서도 어지럼증에 시달려야 했다. 어떤 날은 우울증 약 복용량이 늘어나고 어지러움도 합쳐져 쓰러지다시피 잠만 잤다. 가족들을 생각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말씀처럼 나는 또 한 번 죽은 것이다. 이번 일로 나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도서관에 가면 다양한 심리학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물론 읽기 시작한 것도 최근이다. 그전까지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랬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누군가는 내가 절박하지 않다고 했다. 신경쇠약 상태에서 그들의 말은 내게 그대로 투영되어 곧 내 생각이 되었다.


'아, 내가 게으른 인간이구나, 내가 나약하구나, 절박하지 않고 배가 아주 불렀구나.'  이런 생각들이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산 시체도 나처럼 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은둔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럴 만큼의 힘듦이 없기 때문에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래서도 안된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부모님 이전에 내가 생각해야 하는 건 '나 자신'이란 걸 말이다. 무엇이든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은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한 나는 외할머니의 안부를 물어보는 전화와 상담선생님의 만남으로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정말 놀랐던 점은 무서운 영화라면 진저리를 치는 내가 무서운 영화 마니아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서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감정이 상실된 것만 같았다. 내 머릿속은 레이브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예창작학과에서 썼던 나의 이야기의 주인공인 레이브는 나의 다른 자아이자 우울증이다. 


 21살에 다시 마주한 그는 더욱 강력해졌고 상대하기 더 까다로워졌다. 우울증의 재발이었다. 1학년 과탑, 처음으로 사귄 많은 친구들, 마음에 드는 수업들은 전부 한 바탕의 꿈만 같았다. 나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후회를 하며 예전에 레이브를 물리쳤던 방법들을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예전의 방법들은 먹히지 않았다. 영화를 봐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책은 읽히지도 않았고, 공부도 못하겠고, 핑계만 늘어갔다. 시달릴대로 시달린 다음 도움을 청한 뒤에야 상담 선생님과 얘기를 나눌 정도의 힘이 돌아온 후에야 나는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할머니의 조언에 힘입고 부모님의 지지하에 요가만 하며 나머지 시간은 시체처럼 지냈다. 수치스러웠고 이 여름이 너무나도 혹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을 고르고 그곳에 가서 내 문제점들을 내 머릿속에 있는 고민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들을 골라 읽으니 자연스레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았을 때 난 희열을 느꼈다. 내가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감정 일지도 쓰기 시작했고 오늘이 변화의 기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책 속에 답이 있다는 의미를 이제야 깨달았다. 책을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해방감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모든 걸 내려놓고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책들은 레스 페미, 짐로빈스의 '오픈 포커스 브레인', 그리고 모로토미 요시히코의 '인정 욕구 버리기'였다. 문득 책을 읽다 보니 1학년 때 학과에서 배웠던 개념들이 보였다.  그 개념들을 보자 내가 즐겨 들었던 수업의 교수님이 떠올랐다. 내가 자퇴를 했을 때 유일하게 전화가 왔던 분, 나를 우수하게 바라봐주신 분, 그분의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많은 치유를 받았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젠장. 학과가 싫었던 것이 아니었다. 다만, 다만... 내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내 꿈을 밀고 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예전에도 그랬듯 다시 일어날 것을 다짐하며 나는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가족상담을 받으라는 할머니와 상담선생님의 권유에 덧붙인 나의 설득이 엄마에게도 통했다. 또다시 깨달았다. 나는 죽을 수 없다. 수면 내시경 경험은 별로였고 죽는 건 무섭다.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는 나 자신을 보고 싶었다. 죽기 전까지 불안과 눈치로 살긴 싫었다. 책의 내용처럼 내 삶의 주인과 내 감정의 주인이 나인 삶을 살고 싶다. 더 이상 무서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퇴원하는 날, 또다시 불안해졌다. 세상이 여전히 무서웠다. 다들 불안한데 그냥 살고 있는 거라고 말하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도 나는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변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의지를 천천히 불태워 내 마음속을 전기레인지로 만들어놓고 싶었다. 언젠가 꺼지더라도 다시 뜨거워질 수 있길 바라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얼 하고 싶은지 아직 정해진 건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게 딱 하나 있다. '이전처럼 살지 않는 것.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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